진보도 불편해하는 내가 '친북'이라고요???

그때 한 꼬마가 외쳤어요.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 아무 것도 안 입었어요” 꼬마의 말을 들은 임금님은 비로소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지만 행진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 안데리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중에서

‘벌거벗은 임금님’과 비슷한 사건이 조선일보 기사에서 재현됐다. “최태성 교사는 친북 좌편향 역사교사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 최 교사의 강좌를 들었던 상당수 학생들이 “조선일보가 치우쳤다. 편파보도다. 사과하라”고 주장한 사건에서다.

이와 관련해 미디어펜은 ‘최태성 강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최태성 당사자, EBS 입장, 조선일보 입장, 공정연대 입장, 언론입장, 강좌를 들은 학생들 입장을 각각 들어봤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보수성향 단체인 공정언론시민연대의 주장만을 수용해 “공영방송이 왜곡된 근현대사를 강의했다. 그는 대부분의 강의가 반한, 친북적 입장으로 일관돼 있다고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최태성 역사 교사.
▲최태성 역사 교사.

◆최태성, 대통령께 하소연하다

최 교사는 보도 당일 EBS 홈페이지와 청와대에 각각 글을 남겼다. 청와대에 남긴 글에서 최 교사는 “제 역사관은 딱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랑스럽다, 결코 패배주의의 역사가 아니다,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봉건과 식민, 독재와 가난으로부터 벗어난 큰 선물을 받았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자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저를 친북 좌경 세력, 反대한민국 세력으로 매도해 버렸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최 교사는 EBS 홈페이지에서 “어찌 보면 조선일보와 공정연대 모두 나와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하고 싶은 ‘우리’인데... ‘우리’가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는 이상한 형국에 빠져 버렸다”면서 “언젠가는 진보를 주장하는 분의 글에서 역사를 너무 보수 반동으로 강의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글을 받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이지... 웃어야 할지...(중략)... 반박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 참 서글프다”고 적었다.

◆나는 교과서에 충실했다.

최태성 교사는 전화통화에서 “조선일보나 공정연대가 알면서 일부로 외면한 것인지, 몰라서 간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빠뜨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서 “EBS 교육은 수능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준비된 강의라서 교과서 팩트를 중심으로 강의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내용이 문제라면 근현대사 역사 교과서가 문제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최 교사는 언론보도에 대해서 “공정연대는 충분히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조선일보는 공정연대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그 주장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당사자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사실처럼 보도해서 한 개인을 매도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학생들 입장, “우린 똑똑해요”

EBS 강좌를 들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대부분 학생들은 “조선일보 보도가 완전히 잘못됐다.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조선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는 학생들이 등장하자, 최태성 강사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너희들 1인 피켓 항의 시작했더구나. 오늘은 한 여학생이... 내일은 한 남학생이... 정말 고맙다. 그런데 (1인 시위를 그만두길) 간곡하게 부탁한다. 날 진짜 응원한다면 이제 수능 1등급을 맞아주라. 큰별 쌤 강의듣고 1등급 나왔다고 선배들처럼 자랑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Daum 아고라에 ‘최태성선생님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과 및 정정보도요청을 청원합니다’ 서명운동에 1만명이 서명을 했고, 그 글에 올라온 댓글 중에서 윗 부분에 올라온 글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닉네임 룰루룰루님은 “우리나라 정치 언론의 폐해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이런 모습을 보게 되어 대한민국의 한 개인으로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어서 해당 기관과 단체에서 사과를 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 정의가 있는 나라이고, 내가 사회에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야겠다는 생각, 나는 자랑스런 대한인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주길 바랍니다. 또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올바르게 역사를 알기를, 객관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유은영 학생은 “최태성 선생님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존경하시는 분이 모욕당하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언론이라는 것이 이런 겁니까 그저 자극성 보도에, 한쪽으로 치우쳐 어떻게 해서든지 보도대상의 약점만 노리는 것입니까 같은 신문사 안에서 같은 분에 대한 평가가 갈렸다고 하던데 이건 또 뭡니까”라고 따졌다.

요셉이우쭈쭈님은 “항상 기사내용만 보면 다 사실인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배우고 있다. 이런 인식을 자기들 마음대로 평가하는 게 정말 나쁜 거다. (솔직히 말해서) 진짜 언론 몇 개나 있습니까 거의 없다고 본다. 빨리 사과해라”고 비판했다.

땡글땡글이님은 “제시한 팩트 중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몇 개만 골라서 공격하는 조선일보의 행동이 우습고 비겁하고 역겹다. 강의를 쭉 들어보면 태성쌤은 공정한 팩트 제시에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인 여러 팩트를 그렇게 소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역사관을 말할 때 보면 빨갱이보단 민족주의에 가깝다고 보여지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사랑느낌님은 “역사를 역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사람의 수헙생으로서 화가 치밉니다. 11년동안 수많은 수험생들을 위해서 헌신하신 진정한 교육자에 대한 보답이이런 왜곡되고 편향된 기사라는 사실이 참 기분나쁘고 한심합니다”라고 적었다.

◆ EBS, “조선일보 기사는 왜곡됐다”

EBS는 수능강의 근현대사 강의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EBS는 “해당 강의는 검인과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고, 검정 교과서에 준해서 검인과정을 거쳤다”는 취지로 ▲기사내용 ▲강의내용 ▲검정 교과서 내용 ▲기사에서 제외한 부분을 비교 검토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특히 최 교사를 친북교사로 몰아세웠던 부분에 대해서 EBS는 “위 강의 내용은 검인정교과서 서술내용을 기본으로 1950년대 6.25 발발 직전의 북한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그 가운데 북한이 당시 내세웠던 명분을 말한 것이지 북한을 우호적으로 말한 것이 전혀 아니다. 이는 위 강의 내용 중의 내용 중 바로 뒤에 그들(북한)의 착각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기사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언론시민연대는 보도자료로 “최 교사가 ‘착각’이라고 표현한 것은 북한의 식민지민족해방론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이 누락되자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했다고 김일성과 소련 등이 착각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의 식민지민족해방론이 착각이었다는 언급은 아니라고 우리는 분석했다. 문맥상 최 교사의 반박은 성립되기 어렵다. 최 교사의 실제 의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강의록의 문맥상 식민지해방론이 착각이었다고 설명한 것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 침묵과 묵묵부답

“최태성 강사와 관련된 기사에 대해 현재 조선일보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상훈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전화통화에서 "그만 하시죠”라며 즉답을 피했다.

◆언론입장, “조선일보 보도 문제있다” 지적

PD저널, 오마이뉴스, 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 뉴시스 등 30여개 언론사들이 ‘최태성 강사의 해명자료’를 보도했다. 특히 EBS 현직 PD는 PD저널을 통해 ‘수구언론과 왜곡의 법칙’의 제목으로 “조선일보와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실의 ‘근거’가 되어 조선일보는 공정언론시민연대를,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조선일보를 근거로 자기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흔히 이러한 방식을 업계 전문 용어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보는 EBS의 해명자료를 상세하게 보도했고,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는 4일자 4면 'EBS 인기 강사의 황당한 근현대사 강의'란 제목의 보도에서 "북한은 美식민지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빨갱이 골라낸다면서 머리 짧다고 그냥 죽여"란 부제를 붙이고 최 교사와 EBS에 대해 색깔 공세를 전개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