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만능주의 구시대적 유물…경영 활동 저해 투자 위축
기업 투자실패를 경영자에게 과도하게 책임지우는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고의범을 처벌하기 위한 법 규정인데 현행 배임죄는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경영상 과실인 경우에도 처벌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임죄 적용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기업인들이 중요한 투자를 결정할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는 곧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 선진국들은 배임의 문제를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배임을 형사 처벌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경영판단의 원칙과 고의성을 법률에 명문화하고 있다. 즉 경영자가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내린 투자 결정이 예측을 벗어나 손해가 발생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현행 배임죄 규정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향후 바람직한 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와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18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오락가락 배임죄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는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로 시작했다. 패널로는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동욱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윤원기 법무부 검찰국 형사법제과 검사가 참석하여 토론했다. 아래 글은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Ⅰ. 문제제기

2015년 3월 2일 신현규 전 토마토 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형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 규정에 관해 낸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최종적으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임죄 규정이 모험적 기업가정신을 말살시키고 있다는 지적들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현행 배임죄를 폐지하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수정 내지 보완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배임죄 규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경영자가 투자에 실패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배임죄로 기소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현행 형법상 배임죄에 관한한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하여 경제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중요한 투자를 결정할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고 있는 현행 배임죄 규정은 반드시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후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Ⅱ. 구시대적 유물, 배임죄 규정

현행 배임죄 규정은 형법 제정당시인 1953년부터 존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배임죄의 처벌대상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단지 개인사업자의 하수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배임행위에 대한 입증이 쉬웠고 손해사실도 분명했기 때문에 법적용상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천, 수만의 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기업 CEO에게 있어 무엇이 배임인지,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처벌을 받게 되는지 불분명하게 되었다. 그 동안 경영자들에게 있어 배임죄란 사법부의 의도에 따라 처벌여부가 결정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식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특히, 복잡다단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모험적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있어 배임죄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비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 지난 5월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 단독 이흥권 부장판사는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은행 직원 A(55)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진=SBS뉴스 영상캡처

또한 특경가법상 배임액이 50억원을 넘는 경우 무기징역 등 가중 처벌하도록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역시 1984년 특경가법 제정당시 50억 원의 화폐가치와 30년이 지난 현재의 화폐가치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 역시 구시대적 형사벌제도임은 분명하다.

Ⅲ. 형벌만능주의 확산주범, 배임죄

우리나라는 6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범죄 이외에 새로운 유형의 경제범죄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제범죄관련사범을 처벌하기 위하여 경제형법 분야에서 40개 이상의 새로운 경제범죄 유형을 정하고 이를 형사처벌하는 근거규정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소위 경제사범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 하에서 이윤추구와 성장을 도모하는 경제주체인 경우가 많아 이들을 일반 형사범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매우 커 왔다.

따라서 경제범죄의 경우 사회질서유지차원에서 형사처벌은 불가피하지만, 우리의 경제현실과 법현실을 고려하여 어느 범위까지 형사처벌의 범위를 확대하여야 하는가 하는 점이 논란이 되어왔다.

일반적으로 경제범죄는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제범죄와 초개인적 보호법익, 즉,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경제범죄로 크게 대별하여 볼 수 있다. 이중에서 개인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제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와 침해를 입은 법익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형사처벌을 함에 있어서 법리상 커다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초개인적 보호법익, 즉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경제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침해를 받은 법익이 매우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하고자 하는 경우 그 법리상 문제점이 많아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형사정책은 이러한 사회적 법익침해사범의 경우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피해사실이 불명확하더라도 이를 추상적 위험범으로 보아 형사처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지난 4월, 두꺼비 진로의 창업 2세, 장진호씨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재계 24위까지 부상했던 진로는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금융차입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되었다. 장전회장은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국내에 귀국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와 중국을 유랑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형사처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형법을 비합리적으로 비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인권침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따라서 경제범죄에 대하여는 제1차적으로 예방적⋅규제적 차원에서 행정처벌을 가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형사벌을 가하는 것이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견해들이 많아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적 현상을 보면 전통적으로 규제행정법이 주로 담당하여 왔던 영역에 까지 형법이 개입함으로써 법집행상의 충돌과 해석상의 혼란을 초래하고 경제질서에 혼란을 가져오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법익침해사범에 대한 과도한 형사벌을 가하는 대표적인 법률로 배임죄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우선적으로 행정벌을 가하고, 이러한 행정벌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에 한하여 형사처벌을 가하는 보충성의 원칙을 입법시 확대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Ⅳ. 결어

공공의 복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험발생을 예측하고 엄격한 행동규준을 설정하는 권한을 국가에게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어떠한 행동규준을 통하여 공공복리라는 차원에서 국민의 경제활동과 사적 자치에 관여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정치적 판단보다는 법리적 판단과 헌법적 가치판단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공공복리를 위해 국민의 사적 자치에 국가가 개입함에 있어서는 세계적 추세는 형사벌적 규제보다는 행정벌적 규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국민의 사적 자치에 대하여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추상적 위험범으로 처벌을 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죄사실의 입증곤란성이라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경제범죄에 대한 형법의 예방적․규제적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형법의 비합리적인 비대화와 확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점차적으로 양벌규정을 두고 있는 법률들의 개정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도덕적 비난의 대상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배임죄에 대한 가중처벌제도에 대한 대대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