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실패를 경영자에게 과도하게 책임지우는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고의범을 처벌하기 위한 법 규정인데 현행 배임죄는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경영상 과실인 경우에도 처벌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임죄 적용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기업인들이 중요한 투자를 결정할 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는 곧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 선진국들은 배임의 문제를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배임을 형사 처벌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경영판단의 원칙과 고의성을 법률에 명문화하고 있다. 즉 경영자가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내린 투자 결정이 예측을 벗어나 손해가 발생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현행 배임죄 규정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향후 바람직한 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와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18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오락가락 배임죄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는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로 시작했다. 패널로는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동욱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윤원기 법무부 검찰국 형사법제과 검사가 참석하여 토론했다. 아래 글은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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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
1. 기본 전제
(1) 어떤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보면 그러한 행위의 발생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가해행위의 발생은 민사적 책임을 물어도 억제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가한 행위는 그로 인해 자신이 그러한 행위로 얻게 된 이익만큼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면 억제될 수 있다.
(2) 그러나 타인에게 경제적 손해를 가한 행위가 의도적이라면 민사적 책임으로 부족할 수 있다. 의도적 가해행위는 은폐될 수 있어서 피해발생액만큼 경제적 배상을 하도록 과소 억제된다. 의도적 가해행위로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이 기대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경제행위에 대해 형사적 처벌은 광범위한 사회적 피해를 초래하는 가해행위로 민사적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억지효과(deterrence effect)가 부족하거나 사기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타인에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3) 형사적 처벌이 유효하려면 금지하는 행위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그래서 합리적 개인이라면 사전에 금지되는 행위의 유형을 누구나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금지행위인지 사전에 알 수 없어 그러한 행위를 전혀 억제할 수 없거나 처벌을 두려워하여 금지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위마저 금지시키는 과다한 억제가 발생한다. 특히 어떤 경제적 행위는 손 해를 가져다 주지만 동시에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따라서 기준이 불분명하면 사회적 이득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 자체가 과도하게 제약될 수 있다.
2. 배임죄 처벌에 따른 문제
(1) 대부분의 기업이 기업집단을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배임죄를 기업의 경영활동에 적용하면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과 개별기업의 이익이 충돌하여 기업집단의 효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개별기업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는 있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달리 본 것은 회사가 영속적인 존재로서 주주만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거래관계에 있는 이해당사자의 이익도 반영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기업은 계열기업들로 이루어진 기업집단에 속한다. 공정거래법 등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동일인이 지배하는 법적실체로 인식하여 이를 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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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 단독 이흥권 부장판사는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은행 직원 A(55)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진=SBS뉴스 영상캡처 |
그런데 기업집단의 이익은 개별기업의 이익과 다를 수 있다. 개별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면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이 증가하겠지만 기업집단의 이익이 증가하였다고 모든 계열기업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전체 기업집단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합리적 경영판단이 일부 계열기업의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경영판단이지만 일부 개별기업에 손해가 초래되어 배임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켰지만 일부 계열기업에 손실을 초래한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하면 사실상 존재하는 기업집단이라는 기업형태를 무력화시키거나 기업집단의 시너지 효과를 반감시키게 된다. 나아가 기업집단의 이익을 위해 단기적으로 일부 계열기업에 발생한 손해가 장기적으로 손해인지도 의문이다. 기업집단의 전체 이익이 증가하면 비록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장래에 기업집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재산상의 손해에는 현실적인 손해뿐 아니라 재산상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어 이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추구하는 기업경영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법원은 손해여부를 판단할 때 실제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만이 아니라 손해발생의 위험이 초래된 경우도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배임의 죄에 있어서 손해는 기존 재산이 감소하는 적극적 손해만이 아니라 장래에 취득할 이익이 상실되는 소극적인 손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판결하고 있다.
법원이 이처럼 재산상실해 발생의 위험까지 손해로 포함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손해가 발생한 경우만 처벌하게 되면 거래의 이행이 미래시점에 이루어져 장래에 손실이 발생할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이를 처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거래를 통하여 미래의 손해가 확정적이라면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는 것은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손해 발생의 위험까지 손해에 포함하다보면 배임죄가 과다하게 확장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손해의 발생과 손해발생의 위험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화폐를 제외한 모든 자산은 위험하다. 경제 여건에 따라 가치가 항상 변동하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이란 확실한 자산인 현금자산을 투입하여 위험한 자산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산된 자산은 시장여건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데 이러한 자산의 매출을 통하여 처음 투입된 현금자산에 비하여 증가된 부분인 이윤을 얻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가 어긋나면 기업은 손실을 입게 된다.
그래서 경영진이 생산활동을 하게 되면 위험한 자산을 얻게 되어 기업에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그것으로 기업에 손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경제여건에 따라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거래에 위험은 항상 수반되고 있다는 점에서 손해발생과 손해발생의 위험을 동일시한다면 거래의 실제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임죄의 성립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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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두꺼비 진로의 창업 2세, 장진호씨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재계 24위까지 부상했던 진로는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금융차입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되었다. 장 전 회장은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국내에 귀국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와 중국을 유랑했다. /사진=연합뉴스 |
물론 법원이 경영활동이 갖는 위험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기업경영은 원천적으로 위험을 내제하고 있기 때문에 배임죄의 적용은 엄격하여야 한다. 즉 경영상의 판단과 관련된 제반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기업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여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어야 배임죄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기업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경영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시장거래에서 거래당사자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경영자는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상의 판단을 내리지만 그러한 결과가 자신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고 기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회사의 이익과 함께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의도와 달리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배임죄의 처벌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실 기업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기업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설혹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주주들은 이러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 기업 손실에 대한 일차적 피해자는 주주들이다. 이들은 경영자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다양한 구제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현재의 구제수단에 한계가 있으면 입법보완을 통해 주주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배임죄에서 손해액의 산정이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산의 손해액 산정이 쉽지 않다
배임죄에서 손해액의 산정이 중요하다. 손해액의 산정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뿐 아니라 시효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데 시효는 5년이다. 하지만 손해액이 커지면 처벌이 달라진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 3조에 따르면 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처벌을 받으며 시효가 10년이다. 그리고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의 처벌을 받으며 시효가 7년이다. 이들 법률이 적용될 경우 이득액에 상당한 벌금이 부가될 수 있다.
그러나 손해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정한 또는 객관적인 거래가격이나 거래조건을 형사법원이 파악하기 어렵다. 경제적 거래조건은 당사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동일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도 당사자들의 주관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는 것이다. 거래에 대한 객관적인 공정한 가치가 있어서 거래당사자들이 모두 그렇게 평가한다면 이들 사이에 거래가 일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합병이나 사업의 인수 등과 같은 시업의 확장과정에서 거래주식의 가치에 대한 평가여야 하지만 비상장주식에 대한 객관적 평가기준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법원이 공정한 거래조건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으면 법원의 판단에 따라 거래 당시 경영자의 합리적 판단이 사후에 배임죄로 처벌될 위험이 커진다.
3. 배임죄 처벌의 방향
(1) 배임죄를 개정하여 기업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입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에 재산상 손실을 가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배임죄를 투자위험이 따르기 마련인 기업의 경영활동에 확대 적용하는데 있다. 그래서 배임죄를 유지하는 한 이를 어떻게 개정하든 여전히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법원이 기업활동에 대해서만 배임죄의 적용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배임행위와 달리 기업활동에 배임죄를 적용할 때 경영판단을 적극 인정하여 합리적 경영판단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면 형사적 처벌을 피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상의 판단을 입법 기술상 쉽지 않다.
주주총회 등 형식적 요건을 거치면 처벌을 배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모든 경영활동에 대해 주주총회를 열기 어렵다.
(2) 그래서 배임죄를 폐지하되 이에 따른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를 다른 법률의 보완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형법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경영활동에 대한 과다 억제를 줄일 수 있어 바람직하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처벌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배임죄는 피해자가 이를 사후에 인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민사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의도적으로 배임죄를 저지르거나 민사적 책임으로 이를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의도적 배임행위는 대부분 피해자를 기망하여 발생하는 것이므로 형법의 예를 들어 사기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는 배임죄를 따로 규정하지 않고 사기나 횡령 등으로 이를 처벌하고 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에 회복가능성이 없는 배임행위인데 이는 형사적 처벌보다 사전적 규제가 바람직하다. 현재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나 상법 세법 등을 통하여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큰 문제가 없지만 이에 따른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를 우려한다면 이들 법률의 보완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