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 카자흐스탄이 20일(현지시간) 변동환율제를 전격 단행했다.

카자흐스탄은 그동안 저유가 및 주변국 러시아, 중국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절하압박을 강하게 받아온 터라 이번 선택은 당연하나 도입시기와 방법이 매끄럽지 못해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변동환율제 시행 직후 "우리에게 대안이 없었다"고 강변했다. 악화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 당국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기존의 관리변동환율제를 고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는 의미다.

실제 카자흐스탄 경제는 지난해 말 시작된 최대 교역국 러시아의 위기와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악재를 만나며 먹구름이 몰려왔다.

2014년 기준 국가 총 수출의 83.5%를 자원분야에 의존한 카자흐스탄은 유가급락에 원유수출 이익으로 조성한 국부펀드가 67억 달러 감소했다. 경상수지는 35억 달러 적자를 봤다.

또 루블화 가치가 떨어지며 러시아 제품에 경쟁력이 밀린 카자흐스탄 제품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카자흐스탄의 국내 중소기업 수는 86%, 올 상반기 대외수출은 73% 급감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에 카자흐스탄 통화인 텡게화의 가치절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서 성급한 평가절하로 홍역을 치른 카자흐스탄 정부가 또다시 당국의 주도하에 통화가치를 내리기에는 부담감이 컸다.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은 지난해 2월 세계경제 악화를 이유로 하루 새 텡게가치를 약 19% 내렸다.

예고 없던 절하조치는 물가급등, 뱅크런(대량예금인출) 사태 등을 불러왔다.

아울러 30%에 달하는 시중은행의 부실채권(NPL)비율을 당국이 구제하려 절하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며 변호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절하취소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여론은 들끓었다.

이 때문에 이번 변동환율제 도입 또한 잡음이 많다.

현지 당국은 최근까지 급격한 환율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다 갑자기 말을 바꿨다.

카이랏 케림베토프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장은 지난달 환율변동폭을 1달러당 170~188 텡게에서 170~198 텡게로 늘리며 "다음 분기 달러당 기준환율이 190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환율을 안정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케림 마시모프 카자흐스탄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와 중앙은행은 기존의 환율변동폭 제한을 폐지하고 오늘부터 변동환율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국이 앞선 약속과 달리 환율제도 변화를 통해 한 달 만에 사실상의 절하를 단행한 것이다.

 

이후 약 5%의 절하면 충분했을 텡게 가치는 무려 34%나 곤두박질쳤다. 카자흐스탄이 약 1천억 달러의 외화를 보유했음에도 국제금융시장에서 국가부도위험률은 19.96% 치솟았다. 시장이 지금의 경제여건보다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보인 것이다.

변동환율제 시행 이틀째인 21일 외환시장에서는 1달러당 텡게 환율이 첫날 255 텡게보다 내려간 240선을 유지하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현지에서는 텡게 절하로 정부재정 안정 및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며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물가급등·소비심리 위축 및 통화 안정성 상실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