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여성으로서는 처음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받아 구속 기소된 전모씨(45)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앞서 전씨는 대해 지난해 8월 이별을 요구하는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잠든 그의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강간미수죄) 등으로 검찰에 송치, 구속 기소됐다. 2013년 6월 형법상 강간죄의 피해 대상이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된 이래 여성 피의자에게 혐의가 적용된 첫 사례다.

하지만 이 사건은 1심 무죄 판결에 따라 지적장애가 있는 피의자 전씨 측 입장이 조사 단계에서 충분히 경청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부실 수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전모씨(45)는 앞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받아 구속 기소됐지만 22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경의 수사과정이 도마에 올랐다./사진=JTBC 뉴스 캡처

23일 이 사건을 맡은 검찰측 말을 종합하면 전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연남이 가학적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전씨가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단서였지만 검·경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소사실에는 '전씨가 수면제를 먹이고 양손과 두 발을 결박한 채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는 내연남의 피해 진술만 채택됐다.

반면 전씨 측 변호인은 재판에서 상습 가학행위를 해온 내연남이 또다시 찾아오자 전씨가 두려운 마음에 그의 동의 하에 손발을 결박한 것이며 수면제도 함께 복용한 만큼 강간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건 현장에 있던 혈흔 대부분이 전씨의 것으로 파악됐고 전씨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도 있었으나 증거 분석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경은 175㎝의 평균 체격을 지닌 남성이 150㎝를 겨우 넘는 여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점, 전씨가 내연남에게 '한 번만 만나달라'고 요구한 점 등을 내연남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한 근거로 들었다.

다분히 편견이 섞인 판단에 따라 전씨 측 주장이 배척당한 것이 아닌지, 수사기관이 전씨가 내연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부분을 간과한 것도 부실 수사가 아닌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선후 관계에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전씨가 망치로 내연남을 때린 것 외에 내연남이 전씨를 폭행한 것도 쌍방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검찰은 전씨를 기소하면서 내연남도 폭행 혐의로 기소하는 게 적절했지만 검찰은 내연남에 면죄부를 줬다.

지적장애인이 경찰과 검찰 조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국선변호인은 피의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부터 피의자 변호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전씨는 도움 없이 경찰과 검찰의 모든 신문 과정을 거쳐야 했다.

변호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서울변호사협회에서 각 경찰서에 변호사를 배치하는 '당직 변호사 제도'를 운영하지만 전씨와 같이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마저 활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