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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최고위급 회담일 이번 황병서-김관진 라인의 마라톤 협상 결과는 현실적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한반도 평화를 담지할 파격적인 합의나 속 시원한 조치는 역시 환상이었다. 미몽에서 깨어 현실의 아침을 직시해야 할 때다. 지금 손에 쥔 타협안이 남북이 마주한 현실의 자화상이다. 평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손쉽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아닌 것이다.
협상결과를 읽는 타당한 독법(讀法)은 무엇일까? 저쪽이 요구하는 확성기 중단과 우리편이 기대하는 사과표명과 재발방지 요구는 마주보고 달려오는 기차와도 같다. 우리가 기대하는 최상의 협상결과라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다짐은 받고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계속하는 거다. 거래 불가다. 반대로 북한이 확성기 중단이란 협상목표를 거저 챙기는 타협 또한 있을 수 없다.
어느 지점에서 타협의 여지가 발생할까? 확성기에 관한 한 온(지속)-오프(중단) 두 가지 옵션 밖에 없다. ‘딜’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내줄 수 밖에 없는 상수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그 ‘값’의 문제다. 값은 힘의 상대가격이지만 흥정 가능한 요소이다. 우리가 포기할 수 없던 마지노선은 북한의 사과를 어떻게든 담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의 문제는 소위 ‘수위조절’이 가능한 영역이다.
모름지기 정상적인 사과라면 잘못을 정중히 시인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어져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1인 지배 체제에서의 사과란 ‘최고존엄’의 전능함을 해치는 중대한 도전이자 불가침 영역에 대한 훼손이라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다.
북한에게 협상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수단이 아니라 ‘혁명의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자기들로선 2인자가 협상을 위해 휴전선까지 내려온 것이 통 큰 양보라는 자세이었을 게다. 남한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낼 기세로 온 사람들이다.
한국은 이제껏 최대한 북한의 형편과 입장을 헤아려주기 위해 애써왔다. 정서적으로 형성된 이런 기조와 분위기를 회담 한번으로 깨기란 애당초 무리였다. 그러니 확성기 중단은 팔 수 밖에 없는 아이템이 됐으니 가격 수용자는 남한이 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줄 수 밖에 없으니, 그 가격이라도 최대한 높여야 하는 부담스런 거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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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천안암과 연평도를 묶어 북한을 압박, 대타협의 물꼬를 틀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황병서도, 김양건도 자기들이 평양에서 수명 받은 사안 외에는 더 진전시킬 역량도 의지도 없는 즉흥적 협상일 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도출해 낼 역량을 갖지 못했기에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결과라는 점을 담담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사진=미디어펜 |
결국 애매모호한 유감 표명이라는 낮은 가격에 이산가족 상봉 추진이라는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서비스(?)를 얹는 걸로 값이 매겨졌다. 이나마 우리측이 사과요구를 끝까지 고수하지 않았다면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내부에서 치열한 노선투쟁을 거치며 살아온 사람들을 말로 이기기란 어렵다. 주체와 선군,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노동당 강령)이 개인의 삶과 사회정치적 존재의 준거인 지상유일의 체제 속에서는 날마다 사상투쟁이 벌어진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곧 그 체제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험한 생각이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합리적인 말과 논리로 설득 당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체제는 협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전술적 도구로 취급한다.
북한의 협상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바뀔 뿐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협상은 전쟁과도 같다. 이 점에 대해 러시아 태생의 정치사회학자로 소련 공산주의 연구의 미국 내 최고권위자였던 네이튼(Nathan Leites)박사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경청해야 마땅하다.
“우리(공산주의자)가 허용한, 우리에게 강요된 양보는 다른 수단에 의한 다른 형태의 전쟁의 지속일 뿐이다. 양보로 인한 평화적 합의를 자본주의자들과의 평화적 합의라고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합의는 전쟁과 같다.”(The Operational Code of the Poliburo, 1951)
60년도 더 된 통찰은 협상에 임하는 북측의 태도를 가늠할 단서가 된다. 이번 협상 결과는 결코 최선이 아니며 한국의 중요 이익을 다루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최악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한국의 어정쩡한 대북관으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한다는 체념어린 현실감 때문이다.
천안암과 연평도를 묶어 북한을 압박, 대타협의 물꼬를 틀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황병서도, 김양건도 자기들이 평양에서 수명 받은 사안 외에는 더 진전시킬 역량도 의지도 없는 즉흥적 협상일 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도출해 낼 역량을 갖지 못했기에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결과라는 점을 담담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아쉬움은 크다. 좀 더 치열하게 협상의 ‘갑’으로 현장을 주도했더라면, 휴전선 11곳에 펼쳐 있는 확성기 수를 50% 까지 줄여주겠다는 양적 감소 방안을 지렛대로 사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다. 6.25 동란을 마무리 짓는 정전회담에 UN군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10개월 간 협상을 이끌었던 조이(C. Turner Joy)는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압축하여 설명했다.
“(공산주의자는) 쟁취할 수 없는 것을 협상을 통해 얻으려 하고, 전쟁의 패배를 협상을 통해 얻으려 한다.”(How Communists Negotiate, 1955)
북한 군 서열 2위 황병서, 대남선동을 총지휘하는 김양건 조화되기 어려운 이 둘이 한자리에 내려왔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절박함은 드러났던 거다. 결과적으로 기존 남북 협상의 틀과 방식을 깬 전무후무한 협상임엔 틀림없다. 과거 남북협상의 연장이었다면 전형적인 공산주의 협상전술로 이렇다 할 성과없이 지지부진 끝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북으로선 당장에 절대적으로 얻어내야 할 것이 다급했기에 비록 가장 낮은 수위이긴 했으나 ‘유감’을 표명하고 기약할 수 없는 새로운 의제, 곧 이산가족상봉에 관한 새로운 협상을 흥정으로 내놓았던 거다. 남은 것은 실행의 문제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북한의 약속이행보다 위반시("비정상적인 사태 발생"이라고 적시됨) 한국이 지켜내야 할 보복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발표된 공동보도문의 내용만으로는 북한의 승리로 비춰진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승리일 뿐이다. 그러니 승리니 어쩌니 하는 낯뜨거운 표현은 삼가자. 그냥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자조적인 현실을 담담히 수용하자.
구체적으로 명시되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재발방지가 해제조건 형태의 단서조항으로 붙은 '비정상적 사태 발생 시'를 보는 우리측 대응이 허언이 아님을 그들이 믿을 때 평화는 싹을 틔울 것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