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가 지난 8일 장인화 전 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최종 낙점했다.
사실 후보군이 쟁쟁했던 탓에 애초부터 최종 1인을 점치기 쉽지 않았지만, 장인화 전 사장이 외부 인사였던 권영수 후보나 최정우 회장의 측근인 전중선 후보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권영수 후보는 지난 1994년 포스코 회장에 선임된 김만제 전 회장 이후 두 번째로 외부인사 출신 회장 후보로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포스코가 철강 사업 외 미래주력사업으로 밀고 있는 2차전지 부문에서 큰 경험을 갖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후추위는 이사회의 호화 출장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볼 때 다소 의외의 결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현재 포스코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한 후추위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도 나온다.
사실 철강업계 내에선 장인화 전 사장에 대한 바람이 컸다. 1988년 포스코에 입사해 쭉 철강인의 길을 걸어온 정통 포스코맨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철강업계 맏형이자 산업계 쌀집으로 불리는 포스코를 맡기에 적절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수요 정체로 성장이 힘든 철강 시장에서 미래산업으로 각광받는 2차전지에 대한 니즈는 새로운 수장에 대한 강한 바람을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후보 추천 이전부터 외압과 방탄 인사 등 수많은 논란에 휘말렸던 후추위는 왜 장인화 전 사장을 선택했을까? 이전 사례를 살펴봤을 때 장 전 사장의 최종 1인 후보 선정은 사실 좀 의외다.
장 전 사장은 지난 2018년 9대 회장 인선 당시에도 최정우 회장과 함께 최종 후보 2인에 올랐던 인물로, 그 전까지 회장직에 오른 이가 정적을 제거하는 것이 관례에 가까웠던 점을 비춰볼 때 최정우 회장 아래서 사장직을 이어온 것만으로도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또 현직이 아닌 자가 회장이 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나이 역시 1955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70세다. 결국 여러 면에서 기존 틀을 깬 것은 물론 쟁쟁한 후보군을 물리치고 최종 후보 1인으로 선정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장인화 전 사장이었을까? 이는 포스코의 현 상황과 정체성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포스코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영업이익도 크게 빠지고 2차전지 등 미래산업 부문 실적 역시 신통치 않았다. 비록 과거 무리한 투자와 문어발식 확장 및 비리 등의 문제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정준양 전 회장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실적 악화는 포스코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로는 외부 환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저가 정책으로 물량 공세에 나서고 있는 중국만이 문제가 아니다. 포스코는 애초에 프리미엄 고급강종을 브랜드화하며 수년째 중국의 저가 제품과 차별화된 수요 시장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최근 장기간 지속 중인 엔저 현상은 포스코와 동등한 품질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산 강종들의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높여주고 있다.
포스코의 제품 판매량은 매년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철강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인 케파(Capacity)가 일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고정 수요처가 있어 납품을 하기에 큰 변화가 없지만, 경쟁 상대인 일본산 제품이 엔저로 저가 효과를 누리고 있어 상대적인 가격경쟁력 저하는 수익이 크게 반감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국내 철강 시장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개방돼 있는 반면, 중국과 미국 등 주요국들은 AD 제소 등을 통해 수입제품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국내에선 정책적으로 수입 철강재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무하다.
특히 재압연 위주의 제품을 생산하는 동국제강이나 KG스틸 등의 제조업체들과의 이해관계도 달라 AD 제소가 쉽지 않다는 점도 한국 철강 시장의 개방도를 넓히는데 한 몫하고 있다. 결국 내수와 해외 시장에서 모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구원투수로 철강업의 장인이라 할 수 있는 장인화 전 사장이 낙점된 것이다.
포스코가 내세우는 불변의 가치는 바로 ‘본원경쟁력’, 즉 철강 산업에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주력 사업 지키고 강화하며 이를 극복해냈다. 비록 철강 산업이 더 이상 신수요를 찾기 어려워 성장이 정체돼 있지만, 미래 투자를 위해 본업이 안정돼야 한다는 기조는 포스코의 근본이다.
외부에서 바라볼 때 장 전 사장은 순혈주의의 폐해이자 호화 여행의 당사자로 보일 수 있다. 또는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이자 최정우 회장과 연관이 적은 인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후추위가 단순히 외부 눈치에 장 전 사장을 후보로 올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미래에 장기 투자를 위한 포석도 모두 ‘철강’ 본원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포스코를 가장 잘 아는 이를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포스코의 정책 기조는 언제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이었다. 철강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래산업 투자에 대비하기 위한 포스코의 큰 그림,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이 사자성어야말로 후추위가 이번 회장 인선에서 가장 강조한 바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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