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쿠바 수교체결에 대해 정부는 “사회주의 외교의 완결판” “북방정책 이후 최고의 외교성과”라고 평가했다. 1989년 이후 우리나라가 동구권 국가 중 처음 수교를 맺은 나라는 헝가리였다. 이후 연쇄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수교를 맺었고, 이로부터 35년이 흐른 2024년 쿠바와 국교수립을 완성했다.
한국과 쿠바 간 수교는 20여년 이상 정부가 관심을 이어오면서 공을 들인 결실이다. 하지만 마침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며 ‘신냉전 외교’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어서 아이러니하다. 쿠바측과 최종 수교 협상이 타결된 것은 지난 설연휴 기간이었다. 그리고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돼 극비리로 의결됐다.
한-쿠바 수교체결은 14일 밤늦게 전격 발표됐다. 외교부는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다. 이로써 유엔 회원국 중 한국이 아직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또 비유엔 회원국 중에는 코소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쿠바는 65년만에 재수교한 것이다. 1949년 7월 쿠바가 한국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양국간 외교관계가 수립됐지만, 1959년 1월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국교가 단절됐다. 그리고 냉전 해체 이후 한국정부는 쿠바와 수교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00년대 들어선 교황청까지 수교 중재에 나서면서 결정만 남았다는 이야기도 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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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도심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 2024.2.16./사진=연합뉴스 |
2017년 6월 윤병세 외교장관이 한국 외교부 수장으로서 처음 쿠바를 방문했다.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쿠바 외교장관회의를 열고 외교관계 개선 입장을 전달했다. 당시 외교2차관으로서 우리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인물이 현 조태열 외교장관이다. 하지만 쿠바의 미온적 태도때문에 수교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1986년 3월 피델 카스트로의 방북 결과 북한과 쿠바 간 친선협조조약이 체결됐는데, 이 조약 서문엔 ‘형제적 관계’가 명시돼있다.
그러던 중 윤석열정부 들어 작년 한해에만 박진 전 외교장관이 쿠바의 고위인사를 3번 접촉한 일이 있다. 박 전 장관은 작년 5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ACS 정상회의와 각료회의에서 쿠바의 외교차관에게 수교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 밖에 주멕시코대사를 비롯해 실무진 선에서도 수교를 위해 여러차례 협의를 진행시키면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북한을 의식해 한국과 수교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쿠바가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쿠바가 힘들 때마다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인도적 지원이 있었고, 또 쿠바 내부에 뿌리내린 ‘한류’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바에서 2022년 8월 연료저장시설 폭발사고, 2023년 6월 폭우피해, 올해 초 식량부족 사태 때 정부는 인도적 지원에 적극 나섰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 후손 11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쿠바 현지에 회원수 1만여명의 한류 팬클럽 ‘ArtCor'가 있다. 2022년 7월 서울에서 쿠바 영화제가 개최됐으며, 작년 12월엔 아바나의 국제영화제 계기 한국영화 특별전도 열렸다. 이처럼 문화교류를 통해 확산된 양 국민간 우호인식이 양국 수교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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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조태열 외교부 장관,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신임 장관·국정원장·권익위원장 및 국가안보실 3차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4.1.16./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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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한-쿠바 수교로 인해 북한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고위당국자는 16일 “북한의 충격이 꽤 클 것”이라고 언급했다. 16일 현재까지 북한이 한-쿠바 수교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관련된 반응으로 볼 수 있는 태도가 나타나 주목된다.
먼저 북한 매체는 15일 북한 주재 외교단 소식을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쿠바는 제외시켰다. 쿠바대사는 이미 평양에 상주하는 만큼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5일 늦은 오후 담화를 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역시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쳐 맞불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정부는 쿠바와 상호 대사관 개설 및 대사 교환 등 후속조치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부정적 반응에 대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북한에게 쿠바는 국제무대에서 중국, 러시아 시리아와 함께 가장 든든하고 오래된 우방이었다”며 “북한과 외교 공조의 필요성이 있어서 한국과 수교를 미뤄온 쿠바와의 협력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 연구위원은 “쿠바와 재수교 합의를 계기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에 정책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통일정책에 대한 지지도 확대할 수 있다”면서 “쿠바의 정치·경제 개혁, 해외이주민정책과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 통일정책을 풍부하게 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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