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경제 쇼크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일부 국가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전 세계 주식시장이 휘청대면서 1998년 아시아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재연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신흥국의 기초 체력이 강해졌고 통화가치 하락폭은 미미해 외환위기가 재발할 우려는 크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또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에서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기초체력 개선된 신흥국…넉넉해진 외화 곳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통화가치가 지난 1998년 이후 최저치로 밀리면서 시작됐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등은 두 통화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크게 밀리자 '동남아 통화가 1998년처럼 떨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블룸버그에 따르면 1997년 말레이시아 링깃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각각 68%, 556% 하락해 올해 각각 21%, 13% 낙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락했다.
아시아 외환위기는 1997년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태국 정부가 고정환율제를 지지할 정도의 외화보유액을 가지지 못하면서 바트화의 변동환율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촉발됐다.
외환위기가 2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고 자국 통화절하의 충격을 막아줄 외화보유액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지금이 외환위기 때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면서 신흥국이 외화보유액으로 단기외채를 갚을 능력이 외환위기 때보다 3~5배 정도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1993년부터 1997년 사이 신흥국의 외화보유액은 수입액의 5~6개월분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2009년 중반 이후에는 15배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모건스탠리는 전했다.
이 밖에도 달러채의 비중이 작아졌고, 변동환율제는 더 안정적인 환율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모건스탠리는 설명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가레스 리더는 "지금과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고정환율제에서 더 유연한 환율 체제로 변화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클라우디오 피론은 "아시아국가들이 과거에 비해 외화차입에 훨씬 덜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4일에는 상하이종합지수가 8.5% 폭락해 2007년 2월 이후 8년 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검은 월요일'을 연출했다. 인도와 호주 등 일부 증시도 금융위기 이후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도 588.40포인트(3.57%)나 떨어지면서 2011년 8월 8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다우지수가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500포인트 넘게 떨어졌던 것은 그해 12월까지 7차례나 된다. 당시 1만1천선을 넘었던 주가는 다음해 3월 6일 6500선 부근에서 저점을 찍기까지 6개월 사이 주가는 반 토막 났다.
상하이지수도 지난 6월 12일 5178.19로 고점을 찍고 24일 2947.94로 밀리면서 3개월도 되지 않는 사이 43%나 떨어짐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금융위기 때와 닮은꼴은 주가 폭락 사태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중국 증시의 불안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중국 이외의 지역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제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패닉은 사실상 '메이드인 차이나'"로 미국과 유로존, 일본 등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제지표는 대체로 양호하다. 중국의 부정적인 소식을 제외하면 엄청난 글로벌 둔화 공포를 지지할 근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기존의 평가를 유지한다"면서 "시장의 우려가 최근 커졌지만 중국의 약세가 글로벌 성장률이나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평가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금융권의 건전성 강화 노력도 '제2의 리먼' 사태에 대한 우려를 낮추고 있다.
지금 중국발 불안으로 야기된 위기가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또 다른 수준의 위기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에 대한 세계 경제의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급격하게 커졌고, 중국의 금융 부실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일대학교의 스티븐 로치 선임연구원은 1조달러에 이르는 중국의 달러화 은행 대출 익스포저와 중국 경제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엄청난 의존도가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면서 기업들의 달러 부채 상환부담이 커졌고,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로치 연구원은 블룸버그를 통해 "이는 중국의 수출이 약해지면서 중국에 의존하는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에도 문제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와 관련 롬바르드 스트리트리서치는 아시아에서 베트남과 태국, 한국, 말레이시아가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와 폴란드가 위험하며 터키는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노무라도 신흥국의 취약한 성장률과 원자재 가격에 대한 압박,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향후 금리 인상은 투자자들의 우려가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유로존의 정치적 문제가 지속되고, 브라질 등 취약한 신흥국에서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오는 가운데 글로벌 성장률도 부진하다는 신호가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기 둔화까지 겹친 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타임지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차입축소)'이 진행됐지만, 채무는 사라지지 않았고 중국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은 대규모 부양책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300%로 늘어 부채 위기가 중국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주요국 정부도 부양책에 나섰다면서 이는 앞으로 추가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때 쓸 수 있는 정책이 제한적이라는 의미라고 타임지는 설명했다.
HSBC의 스티븐 킹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에 "세계 경제는 위기 때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구명보트도 없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