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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진 실장이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무겁고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에 맞게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세상인심이 표변하는 걸 보면 참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던 김연아 선수도 지난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큰 곤욕을 치렀다. 결국 동영상 확인을 통해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게 확인됐지만 자칫하면 깊은 오해가 생길 뻔한 해프닝이었다.
다음 타깃(?)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인 모양이다. 그는 이번 북한과의 ‘무박 4일 끝장회담’ 과정을 총 지휘한 대한민국 안보 분야의 수장이다. 이번 협상과정에서도 그는 목함지뢰 사건을 두고 ‘발뺌’에 나선 북한 측 대표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말하며 고성을 냈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기나긴 협상을 거쳐 남북한이 내놓은 합의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건 합의문 2항의 ‘(목함지뢰 사건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이라는 표현이다.
유감이라는 애매한 표현 대신 ‘사과’나 ‘사죄’처럼 더 뚜렷한 레토릭이 들어갔어야 한다는 견해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 국군 장병 2명이 당한 부상을 생각하면 유감표명 정도로 넘어가려고 하는 북한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애국심을 가진 국민 다수의 심정일 것이다.
합의문 3항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조항 또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한 부분이 있다. 대북 방송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효과를 유보해야 한다는 점은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을 낙심하게 만들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말미암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는 견해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비판이 건강한 수준에서 유지돼야 한다는 점이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 그리고 친선적 교류까지 금하고 있지는 않다. 더욱이 ‘협상’이라는 방식의 소통에 나선 이상 대한민국의 입장만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관객 1000만을 돌파한 영화 ‘광해’에는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어주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이는 비단 국내정치만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일단 협상에 나선 이상 우리 측 입장만 주장할 순 없다. 그랬다가는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더 심한 파국 밖에는 남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언젠가 대한민국이 북한과 전면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충분한 시간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365일 내내 강경한 모드로 나서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도 해롭다. 심적‧물적으로 너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도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국방부장관에 취임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까지 유임되는 진기록을 남긴 주인공이다. 국민적 호응이 그만큼 좋았던 인물이라는 의미다. 국방장관 시절의 그는 북한의 각종 도발상황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레이저 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국방부장관 시절 김 실장은 북의 도발에 대해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부·지원 세력까지 원점 타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북한에서 ‘암살조’까지 내려 보내려 했다는 설이 있었을 정도로 소신을 가진 애국자다. 그런 그가 이번 협상에서 대한민국 애국자들의 입장을 100% 담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한순간에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적합하지 않다.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부장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직분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같은 커다란 조직 안에는 ‘원점 타격’ 얘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늑대 같은 국방부장관도,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완급 조절을 하며 우리 측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는 여우같은 국가안보실장도 모두 필요하다.
김관진 실장이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무겁고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에 맞게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에 대한 비난의 감정은 성숙하게 갈무리되어야 한다. 김관진은 무죄다. 그는 자신의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해 북의 변화를 이끌어 낸 애국자로 평가 받아야 한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