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의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됐다. 무리한 제품 출시로 삼성의 휴대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은 데 화가 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지시에 따른 행보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시장을 장악한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질’ 보다는 ‘양’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불량률이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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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무선전화기 화형식 장면. /사진=삼성전자 제공 |
이는 1979년 부회장으로 취임한 후 줄곧 ‘질 경영’을 강조했던 이 선대회장에겐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에 격노한 이 선대회장은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라고 했다.
이날 운동장 한편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운동장 한복판에는 15만 대의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품질확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운동장에 모인 2000여 명의 삼성전자 직원의 표정은 비장했다. 해머를 손에 쥔 10여 명의 직원이 휴대폰을 박살냈고, 불까지 붙였다. 총 500억 원어치의 휴대폰이 잿더미로 변한 순간이다.
이 선대회장은 훗날 자신의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회수한 제품 모두를 공장 전체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소각하도록 했다”며 “그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무려 150억 원에 달했다. 또 다섯 가지 모델 중에 네 가지는 아예 생산을 중단하고, 대신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당시로서는 손해가 막대했지만 나는 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며 “그 결과 그때까지 4위에 머물러 있던 시장점유율을 3년 만에 수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의 혁신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애니콜 화형식’ 다음 해인 1996년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을 독자 개발하겠다고 결단하고, 1997년부터 휴대폰 수출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수출을 시도할 때 통상 저가 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방법 대신, 처음부터 프리미엄 제품 판매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결국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TV폰(1999년), 1000만 화소 카메라폰(2006년)을 내놓는 데 밑걸음이 된다.
오늘 날 삼성전자가 이룩한 ‘갤럭시 신화’ 역시 ‘애니콜 화형식’에서 출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뿐 아니라 갤럭시 시리즈는 삼성을 국내 기업에서 글로벌 반열로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신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새로운 모바일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갤럭시 S24’를 출시해 최단기간 신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갤럭시 S24 시리즈’의 국내 판매량은 출시 28일 만인 지난 달 27일 기준 100만 대를 돌파했다. 이는 전작인 갤럭시 S23에 비해 약 3주 빠른 속도다. 역대 갤럭시 스마트폰을 모두 포함해도 ‘갤럭시 노트10’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이제는 당연하게 된 ‘불량률 제로’의 ‘질 추구’가 이뤄낸 결실은 분명하다. 한 기업인의 뚝심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도 없었을지 모른다. 29년 전 오늘 ‘애니콜 화형식’을 거행했던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이 오래도록 기억돼야 할 이유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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