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어김없이 돌아 온 국정감사의 계절. 올해 국감은 내달 10일부터 열린다. 호통과 갑질을 넘어 횡패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올해는 제발 보여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비난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 고용이 절벽에 부닥쳐 있음에도 노동시장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강성노조는 기득권을 고수하고 정치권은 표 생각에 눈치보기 급급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다. 약 7개월 뒤인 내년 4월 13일은 20대 총선일이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3대 1인 선거구별 최대·최소 인구편차 기준에 대해 위헌 결정과 함께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대 1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여야는 ‘국민에게 희망 정치’를 약속하며 지난 3월 정치개혁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희망은 고사하고 제 머리 못 깎는 고질병이 어디 가랴. 의원 정수를 늘리려다 여론에 부딪치자 이번에 밥그릇 챙기기에 정쟁으로 세월만 낭비하고 있다. 벌써부터 졸속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잇속챙기기 셈법으로 시간 끌기를 하다 결국 막판에는 전가의 보도인양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빅딜’의 길을 택할 가능성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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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국감에서 국민들은 또 어떤 분노를 느낄까? 내년 4월이면 국민들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기업 망신주기’, ‘눈도장 찍기’, ‘호통 국감’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국감이 ‘기업 국감’이란 불명예를 벗고 ‘정책 국감’이라는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사진=연합뉴스 |
국감은 놀고 먹는 국회, 있으나 마나한 국회라는 의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패막이다. 대한민국 국감은 의원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감추면서 여론을 따돌리며 사냥감 몰이를 하는 사냥터로, 눈도장 찍기의 장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올해도 역시 조짐이 심상찮다. 벌써부터 기업인들의 줄소환을 예고하고 있어서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따르면 야당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LG전자, 포스코 등 줄줄이 기업총수들의 증인신청을 요구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소속으로 자동차업체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유 의원은 정부 반대로 도입되지도 않은 FTA로 인한 무역이득공유제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고 정 회장의 증인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해수위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은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 등 한·중FTA로 인한 10대 수혜업종의 기업 총수에 대해서도 추가 증인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코미디다.
경제상황이 발등의 불인 상황에서 기업 총수들이 며칠씩 대기하며 정치 일정에 맞추라는 건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를 내팽개치자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더구나 연구보고서에서나 거론될 숫자놀음을 굳이 기업 총수에게 묻겠다는 유아적 발상이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노림수는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지금껏 해왔던 ‘눈도장 찍기’나 ‘한탕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구태적 행태다. ‘30초 호통’을 위해 이들이 자신들의 산더미 같은 일을 제쳐 놓고 유독 기업 총수들을 겨냥하는 이유는 뭘까? 국정 전반의 예산지출과 정책 감시라는 국감의 본래 목적을 버리고 ‘기업 국감’에 목매는 이유는 또 뭘까? 항간의 소문은 이렇다. 국회의원들이 기업인들과 안면을 트고 정·재계 유착고리를 만드는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고.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초 의심 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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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정문헌(오른쪽),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심사소위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소위에서는 내년 4월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기준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사진=연합뉴스 |
‘기업 국감’이란 웃지 못할 얘기가 나온 배경은 이렇다. 2011년 78명이던 기업인 증인은 2012년 114명, 2013년에는 15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업인들의 무차별 증인 채택에 대해 ‘국회의 행패’, ‘가질 국회’ 등 비판 여론이 일자 131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의 평균 답변 시간은 평균 1분에 불과했다. 기가 찰 일이다.
국회가 증인 놀음에 빠져 있는 이 순간에도 기업들은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해 잇따라 채용 계획을 내 놓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채용 규모를 대폭 늘려 한 해 평균 1만2000명씩 3만6000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한 해 1만2000명 채용하면 올해(9500명)보다 최소 26%가량 고용을 늘리는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자리 대책을 만들기 위해 그룹의 역량을 모았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측은 “현대건설 기술교육원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2018년까지 4500여 명의 구직자에게 교육 및 취업 기회가 제공된다”고 소개했다. 또 앞으로 3년간 5400여 명에게 벤처창업자금으로 총 240억원이 지원된다.
삼성은 올 하반기 공채에서 20년 만에 바뀐 채용제도를 통해 40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다. 삼성은 ‘직무적합성 평가-삼성직무적성검사(GSAT·옛 SSAT)-실무면접-창의성면접-임원면접’ 등 채용 전형을 5단계로 세분해 “직군별로 채용 방식을 다양화해 그곳에 필요한 인재를 맞춤형으로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SK는 1300명, LG 2100명의 대졸 신입을, 한화는 대졸·고졸 신입사원과 경력직 5700 뽑을 계획이다.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 비상 시국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에 앉아서 호통과 망신주기만을 궁리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국민들은 또 어떤 분노를 느낄까? 내년 4월이면 국민들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기업 망신주기’, ‘눈도장 찍기’, ‘호통 국감’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국감이 ‘기업 국감’이란 불명예를 벗고 ‘정책 국감’이라는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