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신임 호주대사에 임명된지 열흘 가까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대사는 국방장관을 지낼 당시인 지난해 9월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대사 임명 직후 공수처 수사 사실이 부각되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이 대사는 한차례 공수처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8일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 조치에 따라 10일 오후 호주로 출국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법무부에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이 대사는 12일 호주정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신임장은 해외에 파견되는 대사가 자국 국가원수로부터 받아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제정하는 문서이다. 신임장 원본을 주재국 원수에게 제정하기 전 사본을 외교부에 제출하면 대사로서 활동이 가능하다. 호주 측은 이 대사의 외교관 신분증을 미리 발급해 전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런데 장관급이 가지 않던 호주대사직에 굳이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임명한데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는 수여식도 없이 서둘러 현지로 부임시킨 것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공수처의 출국금지에도 대사로 임명한 것 때문에 논란이 커지면서 이 대사는 출국시점을 한차례 연기했다가 마치 도주하듯이 출국했다.
외교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가 해제되기 전 외교관여권을 발급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출국금지 사실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수사상의 비밀로 외교부 차원에서 언급할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외무공무원법 제25조에 따른 외교부 공관장 자격심사도 거쳤지만, 외교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여부를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여권법 제12조에 따르면 장기 2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로 인해 기소됐거나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로 인해 기소중지 또는 수사중지(피의자중지로 한정한다)되거나 체포영장·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람 중 국외에 있는 사람에 대해선 여권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 업무는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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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호주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이종섭 신임 호주대사의 한국전 참전비 헌화 모습. 2024.3.13./사진=주호주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
외교부는 또 이 대사를 서둘러 임명한 이유에 대해 김완중 전 호주대사가 이미 지난해 12월 정년을 초과해 근무해왔다고 설명했다. 또 새로 임명된 공관장이 소수일 때엔 신임장 수여식없이 부임한 뒤 신임장 원본은 외교행낭을 통해 보내고, 나중에 한꺼번에 신임장 수여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관례적으로 외교부 차관보나 국장급이 가는 자리로 인식되어 온 호주대사에 전직 장관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호주가 방위산업 파트너 국가로 떠올랐고, 미국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한국과 외교·국방장관회의를 진행할 정도로 중요국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방장관 출신으로 중량감 있는 인물의 부임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이 대사 부임 논란과 관련해 호주정부에서 우리정부에 문의를 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호주언론까지 다루며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호주 공영언론인 ABC는 12일(현지시간) ‘한국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사 외압 의혹과 대사 임명 및 호주 출국까지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ABC는 “이번 일이 호주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호주 외교부 대변인이 ‘호주는 한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높게 평가하고, 이 대사 지명자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도 함께 보도했다.
사실 수사를 받고 있던 전직 관료를 신임대사로 제정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내달인 4월 재외공관장회의가 있을 예정으로 공수처는 이 때 이 대사를 다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어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진보 성향 교민단체인 ‘시드니 촛불행동’ 등 20여명의 호주 교민이 13일 캔버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두 번째 규탄집회를 열었다.
야당에선 이미 K9과 레드백 장갑차 수출이 성사될 때에도 차관보급 대사였는데 이제 와서 장관급 대사의 필요성에 명분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의혹 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해 7월 30일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의 사인까지 받았던 채상병 사건의 경찰 이첩 결정이 31일 번복된 점을 주시해야 한다. 그 외압을 누가 했을지가 의혹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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