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성준 기자]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 실적이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이 범 오너가 구성원 간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어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세력이 회사의 안위를 뒷전에 두고 경영권 분쟁에만 집중하면서 주주의 건전한 의견을 반영해야 할 주총이 경영권 분쟁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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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도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열렸다. 한 기업 주총에 주주들이 참석하는 모습.(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음)./사진=연합뉴스 |
19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금호석유화학, 한미약품 등은 주총과 관련해 범오너가 구성원 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이들 기업들은 최근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을 겪는 중 경영권 갈등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 75년 동업…'3세 시대' 갈등 본격화
고려아연은 지난해 매출 9조7045억 원, 영업이익 659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3.5%, 영업이익은 28.3% 감소했으며, 매출이 모처럼 10조 원 이하로 내려앉았다.
영업이익도 2021년 1조961억 원, 2022년 9192억 원, 2023년 6590억 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범오너가 집안 싸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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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모습./사진=고려아연 제공 |
19일 주총을 진행한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장씨 일가와 고려아연 최씨 일가가 경영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두 집안은 75년간 동업하며 상호 지분을 보유해왔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3세 경영 세대로 넘어가면서 영풍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와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일가는 배당과 제3자 유상증자 대상을 확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영풍과 장형진 영풍 고문 등 장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31.54%다.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 측 지분은 15.90%에 그치지만 고려아연에 유상증자를 한 한화와 현대차 등을 우군으로 설정하면 최 회장의 지분은 약 33%가 된다. 재계에서는 지분율 8%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은 계열 분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고려아연 측은 유상증자한 기업들도 사업적 파트너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영풍 측은 국내 제3자 유상증자가 결국 고려아연 주식 가치를 크게 하락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표대결 결과는 1대1로 나왔다. 영풍 측이 반대한 현금 배당안은 가결됐고, 제3자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는 정관 변경안은 부결됐다. 문제는 이번 주총이 고려아연 경영권 갈등의 끝이 아닌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추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 차파트너스, 주주권익 내세웠지만 속내는
금호석유화학은 오너가 친족 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박철완 전 상무 측은 최근 삼촌인 박찬구 회장 측을 상대로 3차 조카의 난을 일으켰다. 박 전 상무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차파트너스자산운용에 권한을 위임했다.
금호석화도 지난해 불황으로 실적 악화를 겪었다. 지난해 매출 6조3223억 원, 영업이익 3590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매출 20.7%, 영업이익 68.7% 감소한 수치다.
박 전 상무와 차파트너스는 22일 주총에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하고, 기존 보유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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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석유화학 본사./사진=금호석유화학 제공 |
이에 금호석화 측은 자사주 50%를 3년 간 분할 소각하고, 500억 원 규모의 소각 목적 자사주도 6개월 간 취득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금호석화 경영권 분쟁은 박 전 상무가 지난 2021년, 2022년 두 차례 '조카의 난'을 벌이면서 지난한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주총서 박 전 상무 측의 주주제안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상무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9.1%를 보유 중이고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 시 지분율은 10.88%로 늘어나지만, 박찬구 회장 등 현 경영진 지분 합이 15.89%로 더 높기 때문이다.
투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도 최근 금호석화 손을 들어주고, 박 전 상무 측 주주제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내 자문사인 한국ESG연구소, 서스틴베스트도 최근 금호석화 측 제안에 '찬성'을 권고했다.
◆ '모녀 vs 형제' 한가족 다툼
한미약품그룹은 지난해 호실적을 냈지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제약 시장 경쟁 속에 투자를 강화해야 하는 시기에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28일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총은 한미약품그룹 한가족인 모녀와 장차남 세력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모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및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연합과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사장 연합은 경영권을 두고 심각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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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소재 한미약품 본사 전경..사진=한미약품 제공 |
한미약품그룹은 지난 1월부터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 전문 OCI그룹과 지분 맞교환 방식의 통합 계약 체결됐지만, 해당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장·차남이 해당 계약에 반대하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은 한미사이언스 주총 안건으로 자신들을 포함해 총 6명의 사내·사외이사 선임 건을 냈다. 경영에 복귀해 OCI와의 통합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목표다.
양 측은 첨예한 신경전 속에 표대결에서도 난타전을 예고한다.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은데다 2대, 3대 주주 표심도 알 수 없어 소액주주의 한 표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경제 침체에도 경영권 분쟁…경쟁력 저하 우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마당에 일부 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것에 대한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경영권 도전 세력이나 개인 오너십 강화에 골몰하는 세력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미래 사업 방향 고민에 집중해야할 기업들이 소모적인 경영권 갈등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경영권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사내 구성원의 사기저하는 물론 소액 주주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 추락하게 된다.
주요 주주 세력 간 다툼이 지속되면 국민연금 등 제3자의 판단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경영진의 리더십에 큰 손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에 돌입하면서 기업들이 각자 돌파구 마련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다"라며 "경영권 분쟁이 확산될수록 기업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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