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기자] 4개월여 만에 재개된 노사정 대화가 시작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한국노총의 강력한 항의 등 일종의 ‘어깃장’으로 인해 노사정 간사회의는 시작 40여 분만에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한 대타협을 다음 달 10일까지 이뤄주길 바란다고 밝혔지만, 한국노총은 정부가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하면 대화 불참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31일 열린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노사정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 전날인 9월10일까지 (노동시장 개혁안에) 합의하면 거기에 맞춰 사회안전망 확충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 부총리는 "9월10일 전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 예산안에) 낮은 수준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노사정의 합의 수준에 따라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총리의 바람과 달리 노사정 대화는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싸고 시작부터 진통을 겪는 분위기이다.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 간사회의는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확산에 대한 한국노총의 강력한 항의로 시작 40여 분만에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당초 간사회의에서는 4월 노사정 대화 당시 논의 초안의 쟁점사항을 정리하고, 내달 7일 열리는 노사정 토론회의 주제와 계획안을 확정키로 했다. 하지만, 한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요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논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노총 이병균 사무총장은 "27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를 논의할 별도 협의체를 구성키로 합의했음에도 기획재정부에서 LH 등 공기업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LH가 지난주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하는 등 28일까지 316개 공공기관 중 65곳(20.6%)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은 11곳에 불과했는데, 한 달 새 54곳이 늘어난 것이다.
공공부문 노조는 금속, 화학 부문 노조와 함께 한노총의 주축을 이루는 산별노조여서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인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할 경우 노사정 대화 불참 여부도 검토키로 했다.
노사정위 간사회의는 다음 달 1일 오전 다시 열릴 예정이다. 간사회의는 이병균 한노총 사무총장,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으로 이뤄졌다.
이날 경영계와 노동계는 일반해고 지침 등을 둘러싸고 '장외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노사정에 참여하는 경총을 비롯한 경제5단체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엄격한 해고규제로 인해 능력이나 성과와는 무관하게 고용이 보장되고 해마다 호봉이 올라가는 현재의 제도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초래한다"며 "기득권 근로자를 과도하게 보호해 주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저성과자 근로계약 해지'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정부지침이 아닌 법률 개정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계는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계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노사정 대화 초기부터 제기하고 나선 것은 노사정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마음이 없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불공정한 노동시장을 만들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비정규직을 만들고 써온 주범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며 "노동시장을 이렇게 조성한 장본인들이 자신들의 책임은 뒤로한 채 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뻔뻔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노총은 일반 직원에 비해 엄청난 수준인 최고경영자(CEO) 연봉, 재벌의 대물림 경영 등을 비판하며 재벌개혁을 촉구하고 나서, 양측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커져만 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