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정부는 내년 예산안 국회 제출일정을 감안해 노사정 대타협의 1차 시한을 10일로 생각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한국노총의 임금피크제 도입 중단에 부닥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31일 경제 5단체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올해가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이라며 노동시장 체질 개선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같은 날 열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간사단 회의에서는 한국노총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반발로 의제 설정과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무산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경제 5단체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이 노동계의 반발로 좌초되거나 지연될 경우 기업경쟁력 추락은 물론 벽에 부닥친 고용창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노사정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 3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창출을 위한 7차 기자회견에서 대학민국 청년대학생연합 회원들이 '노사정위'폐지하고 '청사정위' 설치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같은 날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열린 노사정 간사단 회의에 참석한 한국노총은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 향후 일정도 잡지 못한 채 40분만에 종료됐다. 1일 열린 노사정 간사단 회의도 한국노총의 강경한 입장으로 난항이다.

전날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은 “현재 기득권 근로자를 과도하게 보호해 줘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된다”며 “임금 총액을 줄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합리적 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취업 청년, 비정규직 근로자가 경직된 노동시장의 최대 피해자”라며“임금피크제는 기업 비용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 임금 체계 불공정성을 바로잡음으로써 근로의욕과 기업 경쟁력 훼손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경제 5단체의 절박한 심정을 노리기나 한 듯 이날 노사정 간사회의에 참석한 한국노총은 또다시 그 속셈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은 27일 노사정 협의에 참석하겠다며 대화 재계의 첫 조건으로 공공기관 임금피크 추진을 중단을 내걸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30일 현재 316개 공공기관 가운데 20.6%에 달하는 65곳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지었다. 공기업이 16곳, 준정부기관이 26곳, 기타 공공기관이 23곳 등이다. 이처럼 임금피크제 도입 기관이 예상보다 가속력이 붙자 위기감를 느낀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 참석을 빌미로 임금피크제에 대한 제동 걸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65개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내년도 신규 채용 규모는 1460명에 이른다. 정년이 늘어나는 대신 임금을 단계적으로 깎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절감 인건비로 1000명이 넘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노총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따라 스스로 노사정 협의 자리를 박찼던 한국노총은 대화 재개를 천명하며 노사정 대화가 진행된 이후로 임금피크제 도입 계획 추진을 유보해 달라는 공문까지 보내며 협상장을 찾았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자리를 다시 찾은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는 꼴이 된 것이다.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과 더불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밥그릇 나누기에 기득권의 위험을 느낀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저성과자 해고 요건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지침’에 반발하며 자리를 박찼다. 이날 토론회가 한국노총의 반발로 향후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노총은 매일 열리는 간사단 회의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임금피크제 저지는 물론 저성과자 해고 요건 가이드라인에 대해 ‘쉬운 해고’를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은 사업주가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바꿀 길을 열어주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판례를 종합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지나지 않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은 정년 연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 수단일 뿐이라고 밝혔다.

세계 경제계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앞다퉈 해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조 등의 입김에 휘둘려 경영상 해고 요건을 오히려 강화해 고용창출을 막고 노동시장의 경직화라는 거꾸로 가는 현상을 빚고 있다.

노조 기득권의 보도가 된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은 성장가도를 달리던 과거 30~40년 전에 채택된 제도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더불어 기득권을 내려 놓지 않는 강성노조의 갑질로 근로자 내부에서도 불공정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경총은 “노동개혁이 좌초되거나 지연되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추락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며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 활성화 및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개혁조치들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사정 대화를 중단시킨 공공부문 근로자는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1841만4000명 중 9만1647명으로 0.5%에 불과하다. 한국노총 전체 조합원 81만9755명 중에서도 1.66%다. 공공부문 근로자 9만1647명 중 임금피크제 대상자인 55세 이상 근로자만 따지면, 전체 근로자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한국노총은 공공부문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어떤 노사정 대화도 불가하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0.5% 기득권 근로자의 밥그릇 지키기에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