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 "다른 자리 갈 생각 없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금융당국이 기관 투자자의 자체 전산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를 차단하고, 중앙 시스템을 통해 모든 주문을 재검증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매도 전산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개인 투자자들이 요구했던 '실시간 차단' 수준은 아니지만, 이중 검증 시스템으로 불법 공매도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국은 전했다.

   
▲ 금융당국이 공매도 전산화 방안을 마련했다. 사진은 25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과 공동으로 개최된 '개인투자자와 함께 하는 열린 토론회' 참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모습./사진=금융감독원


시스템 구축에는 약 12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운영을 위해서는 법 개정도 필요해 오는 7월로 예정됐던 공매도 재개 시점이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5일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과 공동으로 '개인투자자와 함께 하는 열린 토론'을 열어 불법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작년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금감원과 거래소 등은 작년 11월 '전산시스템 마련 TF'를 발족해 전산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당국은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실시간 차단'에 대해서도 검토했지만, 구조상 투자자의 모든 거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현실화 하더라도 거래 속도를 현재의 5배 이상으로 지연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대신 당국은 공매도 잔고가 발행량의 0.01% 또는 10억원 이상인 기관(외국계 21개·국내 78개사)의 모든 주문 처리 과정을 전산화하기로 했다.

먼저 기관 투자자가 자체적으로 잔고 변동을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자체 시스템을 도입한다. 잔고를 초과해 매도하는 행위를 예방하는 차원이다. 이 시스템은 전일 잔고와 당일 실시간 매매자료를 반영해 실시간 잔고를 산정하고, 잔고를 초과하는 매도주문은 자동으로 거부한다.

보유 수량이 부족할 때는 차입이 승인되기 전까지 공매도가 불가능하며, 차입이 확정되거나 리콜되면 이를 다시 실시간으로 잔고에 반영하는 식이다.

기관의 주문이 이뤄지고 나면 불법 공매도 중앙 차단 시스템인 'NSDS(Naked Short Selling Detecting System)가 모든 주문을 재검증한다. 한국거래소에 기관 투자자의 자체 잔고관리시스템을 전산 연계한 중앙 시스템이 구축돼 기관투자자의 잔고, 대차거래 등 변동내역과 매매거래를 집계한다. 매도가능 잔고와 비교해 무차입공매도를 상시 자동 탐지한다. 무차입공매도 적발 내용은 금감원 공매도특별조사단으로 넘어온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방안이 형식상으론 사후 점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불법 공매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금감원 측 관계자는 "1단계 시스템을 수탁사인 증권사가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자의 각종 의혹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중앙 통제 시스템을 통해 사후적으로 불법 공매도를 잡아내면 실질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할 수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이번 공매도 전산화를 통해 무차입 공매도 감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불법 혐의 거래를 신속하게 탐지해 불법 공매도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모든 공매도 거래에서 거래 내역이 자동 추출돼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는 투자자가 업틱룰(주식 공매도 시 매도 호가를 직전 거래가격 이상으로 제시하도록 하는 제도)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공매도 주문을 일반 매도주문으로 표기한 경우까지 쉽게 적발이 가능해졌다.

시스템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 투자자들이 거래소에 잔고 정보를 제공하게 하려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당국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전산시스템 구축 방안을 확정하고, 21대 국회 마지막 회기 안에 최대한 입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두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법 개정과 별개로 1단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3∼6개월, 중앙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1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던 공매도 재개 시점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불법 공매도가 그간 국내 투자자의 시장 신뢰를 저해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며 "불법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구축을 계기로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이 원장은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과세 유예 방안과 관련해 "비겁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는 입장을 피력해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이날 토론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원장은 "금투세 폐지에 대한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 "토론에서 개인, 기관투자자들이 모두 금투세 제도가 과세 수입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고,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과도 상충된다며 반대한다는 의견을 주셔서 정부 내에서 의견 다시 조율해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이 이슈로 불거져 있을 때 장을 넓혀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배당 내지 이자소득세를 포함해 자본소득 정책을 어떻게 할지 종합적으로 생각해보고 다양한 제도를 연구해볼 수 있다"면서 "국회에서도 전향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민생정책으로 생각해달라는 게 개인적 의견"이라고 부연했다.

공매도 재개 시점과 관련된 언급도 있었다. 그는 "불법 공매도 조사를 지금 단계에서 정리해서 알려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본질적으로는 전면적으로 금지하기까지 배경과 이유에 대해 명분들이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산화 방안이 얼마나 빨리 마련될지, 기술적으로 충분한지, 법 개정이 필요한지 내부적으로 금융위 중심으로 검토 중이어서 지금 단계에서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주제나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대통령실 법률수석 등으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3분기까지는 맡은 역할을 마무리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여러분께 말씀드렸다"면서 "다른 추가 공직에 갈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