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vs 재의결 여야 강경 대치 속 기싸움 본격 시작
특검법에 대통령 수사대상 가능성 열어둬 '거부권 불가피'
총선 압승한 야당, 국정기조 변화 요구 압박에 탄핵론까지
[미디어펜=김규태 기자]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지 42일만인 5월 21일 '거부권 정국'이 시작됐다. 여야 기싸움이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고,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론까지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시작됐다. 취임 후 10번째다.

채상병특검법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대상 가능성을 열어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있지만, 총선을 압승한 야당이 정부의 국정기조를 바꾸라고 요구 압박하면서 결국 '강 대 강' 대결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12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올해 1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과 이태원특별법까지 총 9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노태우 정부(7번)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정부가 됐다.

   
▲ 윤석열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영수회담을 시작하기 직전, 악수를 하고 있다. 2024.4.29 /사진=대통령실 제공


우선 윤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는 여소야대 구도가 4년 더 이어지는 등 국회 권력의 추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수세에 몰리고 민주당이 공세를 가하는 구조가 더 굳어진 셈이다.

실제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헌법수호의 책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오히려 재의요구를 안 하면 (대통령의) 직무유기라고 본다"며 "대통령은 헌법수호라는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외압 부분에는 수사당국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될 부분"이라고 전했다.

추경호 원내대표 또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 합의도 없는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헌법상 방어권을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묶어서 보면, 윤 대통령과 여당의 수세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읽힌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공수처 수사가 끝나고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경우 먼저 특검을 제안하겠다면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후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 변화를 요구받는 상황 속에서,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한 또다른 본질이 숨겨져 있다.

바로 여권 내에서 불거진 '탈당설'을 불식시키고, 야당발 '탄핵론'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20일 열린 국민의힘 초선 당선인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내가 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며 "우리가 힘을 합쳐서 정국을 잘 헤쳐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들에게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서 책임감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책임을 다해달라"며 "재의요구권과 예산 편성권 등 헌법상 대통령 권한이 있는데, 당이 민심을 살펴 건의하면 이를 반영하고 당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협치 메시지는 퇴색했고, '셀프 면죄부' 비판을 이어가며 '대통령 탄핵론'까지 거론하는 야당은 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할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국회를 야당이 장악했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거부권 행사를 통해, 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합심해 대항해야 한다는 명분을 재확인한 것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