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구하라법', 여야 합의 속 국회 문턱 넘지 못해
'낙태죄 위헌' 개정도 21대 국회서 이뤄지지 않아
전문가 "국회 내 여야정협의체 구성해 민생법 처리해야"
[미디어펜=진현우 기자]21대 국회의 임기가 29일 종료된다. 21대 국회는 전날 사실상 마지막 본회의를 마치며 의정활동을 마무리했지만 정쟁의 여파로 주요 민생법안이 폐기될 예정이어서 '민생을 저버린 국회'라는 오명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각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총 2만6582건이다. 이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뻥튀기' 숫자나 다름 없다. 2만6582개 법안 중 처리율(가결·대안반영·부결·폐기·철회)은 9479건에 그쳐 35.7%에 그쳤다. 직전 20대 국회 때의 37.9%보다 4.2%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국회 문턱을 통과한 법안 건수는 전체 법안 중 2973건으로 11.1%에 불과했다.

   
▲ 안개 낀 국회 모습. 2022.10.23/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 수는 전체 발의 법안의 89%에 달하는 2만3564건이다. 그러나 실제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 수는 7238건(30.6%)에 머물렀다. 위원장 제출 법안 통과율(99.1%)과 정부 제출 법안 통과율(58.7%)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런 와중 여야는 21대 임기 내내 정쟁을 이어가며 수많은 민생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1만6379건의 법안이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이 중에는 여야가 합의를 이뤘지만 처리되지 못한 경우와 법안 자체가 방치된 경우, 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에 따른 개정 시한을 준수하지 못해 끝내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여야가 합의를 이루고도 처리에 실패한 대표적 법안이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종료 기한을 6년 연장하는 법안이다. K칩스법은 대기업에 설비투자를 할 경우 15%, 중소기업에는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법안이다. 

이 혜택은 당초 올해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지난 1월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과 양향자 개혁신당 의원 등이 연장안을 발의했고 여야 사아에서 법안 처리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상병특검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에 여야가 몰두하면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가 이어졌고 결국 이번 국회에서는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또 다른 여야 합의 법안인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역시 정쟁 속 뒷순위로 밀리며 폐기가 유력한 상황이다. 구하라법은 지난 2019년 사망한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친오빠가 '어렸을 때 구씨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구씨가 남긴 상속재산의 절반을 취득하지 못하게 하려는 입법 청원을 올린 이후 20대 국회에서 한 차례 폐기된 끝에 21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채상병특검법 등 쟁점 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못했고 결국 구하라법은 20대에 이어 21대에서도 빛을 보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 김진표 국회의장과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지난 5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제76주년 국회개원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4.5.28/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인공지능(AI)에 대한 개념 규정 및 육성·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AI 기본법 역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이번 국회에서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산업 육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AI의 명확한 개념을 규정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AI 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국회는 헌법재판소(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법률 조항을 개정하는 절차에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 2019년 4월, 헌재는 낙태하는 여성 및 의료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판결에서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개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는 이날 민생법안 폐기 원인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21대 국회가 끝내 극한 정쟁의 부끄러운 모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것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도 "민주당 때문에 각종 상임위, 본회의가 정상 진행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폐기되는 이유를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윤 대통령의 잇단 거부권(재의요구권) 사용을 원인으로 꼽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국회 차원에서 여야정협의체를 출범시켜야 한다"며 "법안이라는 것은 예산이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민생법안의 우선순위 처리가 가능해보인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진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