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반도체 유사상품 쏟아져…방지제도 있어도 '유명무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각 자산운용사들이 내놓는 상품들 사이에 유사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베끼기 논란’으로 옮겨붙는 형국이다. 작년 2차전지 광풍에 이어 올해 반도체 투자 열풍에서도 비슷한 트렌드가 관찰되면서 ‘룰’이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각 자산운용사들이 내놓는 상품들 사이에 유사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베끼기 논란’으로 옮겨붙는 형국이다./사진=김상문 기자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때 아닌 ‘베끼기 논란’이 불 붙고 있다. 그 중심에는 ETF가 있다. 비슷한 ETF가 우후죽순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조짐이 보인 것은 작년부터였다. 에코프로가 촉발시킨 2차전지 광풍은 많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신만 소외돼 있는 것 같은 소위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을 촉발시켰다. 작년 7월 액면분할 전 가격 기준으로 주당 150만원까지 치솟았던 에코프로를 추격 매수하자니 고점에 물릴까 두렵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추가상승 가능성도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ETF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여러 종목들을 합쳐서 업종별로 투자할 수 있는 ETF를 마치 개별주식 종목을 매수하듯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트렌드가 탄력을 받자 비슷한 상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하나의 ETF를 구성하는 포트폴리오가 사실상 동일해서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시점 2차전지 테마 ETF는 17개에 달한다. 작년의 2차전지 열풍을 이어받은 인공지능(AI)·반도체 테마 ETF 역시 20여개 수준까지 늘어났다. 각 상품 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다만 투자자들은 아무리 같은 상품이어도 거래대금이 많은 ETF, 대형‧중형사가 출시한 ETF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중소형사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흐름이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국내 ETF 시장은 KODEX 브랜드를 운영하는 삼성자산운용과 TIGER 브랜드를 갖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소위 ‘2강’ 경쟁을 필두로 그 이하 6개사가 혈투를 벌이는 구도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대형사 두 곳끼리의 점유율 다툼도 워낙 치열한 데다 중형급 회사들은 ETF 인기 상품을 내놓는 문제에 몰입하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유사한 상품이 쏟아지는 문제에 대해 서로 민감해진 모습이다.

이를 막을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거래소는 독창적 ETF를 개발하면 6개월간 배타적 사용권을 주는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보호제도'의 심사 기준을 변경했으나 아직까지 신상품 보호를 신청한 자산운용사가 없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금융투자협회(금투협)가 운영하는 신상품심의위원회 역시 5년간 열린 적이 없다.

결국 관련 제도가 존재함에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채로 업계 내부의 감정의 골만 깊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각 회사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공존하는 형편”이라면서 “ETF 시장의 성장세가 꺾일 경우 이 문제가 더욱 민감해질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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