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제74주년 기념사
[미디어펜=백지현 기자]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인플레이션 마지막 구간에서 물가와 성장과의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동결 배경과 향후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창립 제74주년 기념사에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위험이 커진 데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을 상회하는 등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당초 우려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성장지표 뒤에는 수출과 내수의 회복세 차이가 완연하고 내수 부문별로도 체감 온도가 상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면서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의 감소와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섣부른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클 것”이라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와 성장과 관련해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 내수 회복세 약화와 더불어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인한 시장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반대로 너무 일찍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에는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늦어지고 환율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건에 접어든 지금, 이런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말했다.

이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준금리를 빅스텝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든 듯 하다”면서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런 때일수록 국가별로 정책운영 성과가 차별화돼 나타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며 “겸손한 자세로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정교하게 정책을 운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