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지체없이 군사원조’ 조항 부활로 한반도 자동 군사개입 문 열어
상원 과반수 찬성 필요한 ‘러시아연방 법에 준한다’ 조건 단 건 큰 차이
북중 관계 이상기류 있어…푸틴 평양 찾을 때 한중 외교안보대화 열렸다
정부 “우크라에 살상무기 제공 재검토”에 푸틴 즉각 반발…‘신냉전’ 우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9일 정상회담 결과 체결된 포괄적 전략동반자협정이 사실상 군사동맹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러는 이번 협정 4조에 서로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지체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1961년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의 관련 문구와 거의 일치한다. 1961년 조약에도 ‘무력침공을 당할 경우 지체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 및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있으며, 이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으로 평가받아왔다.
 
여기에 이번 북러조약엔 1961년 조약과 2000년 조약에도 있던 ‘한반도 통일 실현’ 문구가 없어졌다. 또 이전 조약까지 채택했던 ‘이 조약은 10년간 유효하며, 5년 단위로 자연 연장된다’ 조항 대신 ‘무기한 효력’을 명시했다. 이번 북러조약 23조엔 ‘이 조약은 무기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돼있다. 다만, ‘일방이 이 조약의 효력을 중지하려는 경우 이에 대해 타방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며, 서면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년 후에 중지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북러조약은 푸틴 대통령의 1차 방북 때인 2000년 체결한 ‘조·러(북러) 친선조약’보다 수직 상승해 ‘조·소동맹 조약’이라고 불렸던 1961년 조약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특히 1961년도 조약에 명시됐던 ‘지체없이’란 문구를 되살려 ‘유사시 한반도에 자동 군사개입’의 문을 열었다.

   
▲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19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환영 공연'을 관람했다고 노동신문이 20일 보도했다. 2024.6.20./사진=뉴스1

북러가 새 군사동맹을 맺은 것은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정부가 경고해온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것이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6일 “러시아측에 일정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성 소통을 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면 과연 남과 북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가 우리정부의 경고도 무시하고 북한과 동맹조약을 맺은 것은 현재 전쟁 중인 상황을 우선 고려한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이번 북러조약의 효과를 곧바로 현실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북한이 침공을 받아 전쟁을 겪을 경우는 앞으로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불확실한 미래에 속한다. 물론 북한 입장에선 탈냉전 이후 처음 외교협정을 맺은데다 러시아의 군사지원까지 확보했으니 김정은의 대단한 성과로 선전할 기회를 업었다.

그런데 이번 북러조약과 1961년 조약에 큰 차이도 있다. 4조에 ‘침공을 받았을 때 지체없이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면서도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의 법에 준한다’며 조건을 단 것이다.

유엔헌장 51조는 한 국가가 무력공격을 당했을 때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한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북러조약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법과 러시아법을 각각 언급한 것은 상황에 따라 군사지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변수’를 마련한 것으로 봐야한다.

러시아연방 헌법에 따르면, 러시아 영토 밖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러시아연방 상원의 권한이다. 러시아연방 상원의 결정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즉, 북한의 군사원조 요청에 러시아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9일 금수산영빈관 정원구역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친교를 다졌다고 노동신문이 20일 보도했다. 2024.6.20./사진=뉴스1

이와 함께 이번 북러조약으로 북러 밀착은 가속화될 전망이지만, 북중 및 중러 관계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열었다. 마침 북러 정상회담 시기 우리나라에서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열리면서 러시아가 평양을 찾았을 때 중국이 서울을 찾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중 외교안보대화의 날짜가 먼저 정해진 것은 맞지만,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기 이전 중국이 그런 사실을 러시아든 북한으로부터 통보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렇다면 중국정부가 한중 간 대화 날짜를 변경하지 않은 것에 속내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북한과 중국은 코로나19 종식에도 불구하고 국경이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여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북한 노동자의 송환 및 재파견 문제와 관련돼있다는 관측이 있다. 즉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금지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 파견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 다롄에 설치됐던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발자국 동판’이 최근 콘크리트로 덮여있는 사실이 전해진 바 있다. 김정은은 1월 일본의 지진피해를 위로하는 서한을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에 보내면서도 비슷한 시기 중국의 자연재해 피해에 위로서한을 보낸적이 없고, 대만에서 반중 성향인 라이칭더 총통이 당선됐을 때도 여러 국가가 성명을 냈는데 북한은 이 명단에서 빠져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과 베트남을 연쇄 방문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베트남과 중국 관계는 좋지 않지만, 베트남과 러시아는 친밀하므로 푸틴의 행보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부터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해왔고, 러시아는 중동 문제를 주도한 역할분담이 이번에 흐트러지면서 북러 밀착을 바라보는 중국의 심기가 좋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 김홍균 외교부 1차관(오른쪽)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4.6.19./사진=외교부

물론 푸틴 대통령이 이미 5월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으므로 이번 북러조약이 중국 입장에서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견제해야 할 골칫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은 분명해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중 외교안보대화에서 푸틴의 평양 방문이 논의된 것이 사실이고, 외교부 보도자료엔 “정부가 러북 간 군사협력 강화에 따른 한반도 긴장조성은 중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만큼, 중국측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중국 외교부는 우리보다 뒤늦게 한중 외교안보대화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한중 간 대화는 타국간 교류와 특별한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북러는 우호적이고 가까운 이웃으로 교류·협력과 관계 발전을 정상적으로 할 필요가 있고, 이와 관련한 고위급 교류는 두 주권국가의 양자 일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러조약이 발표되면서 우리정부는 러시아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푸틴도 즉시 반응하며 “한국의 살상무기 제공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의 순방이 끝난 뒤 한러 간 소통이 얼마나 이뤄질지 여부에 따라 우리정부의 대응이 달라질 전망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북한과 러시아가 결탁해 적극 주도하는 신냉전 구도가 심화될지 주목받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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