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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기 교수 |
최근 한국사 국정화 방침이 정해지자 전교조와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그간 한국사 국정화를 친일독재라며 반대해왔던 일부 단체들과 교육감들이 교육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신 자신들의 대안 교과서를 만들어 한국사교재로 사용하겠다고 칼날을 세우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대다수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매우 걱정스럽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기 독일의 '레오폴트 폰 랑케'는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원래 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의하면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는 자신의 주관이나 관념들을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만 기록하려고 해야 한다.
반면 20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랑케와는 전혀 다른 역사관을 나타낸다.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말 할 수 없고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과거 기록을 논리적으로 해석한 것이 역사이기에 이를 통해 조상의 풍부하고 생생한 교훈 배울 수 있으며 역사와 주변국을 알면 우리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 각자가 유구한 역사의 한 부분을 살고 있는 존재라는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역사적 주체라는 인식이 확고히 설 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아가 바로 서게 된다. 그런 점에서 국정이냐 검정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가 그 본질이 되어야 한다.
현 정부와 국정화를 추진하는 측은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 8종이 특히 근대사 부분에 있어 이념적 편향이 심하다고 주장한다. 광복군 지청천 장군의 독립운동은 축소하고 김일성의 보잘 것 없는 보천보 전투는 미화하고 6.25 전쟁의 원인을 남북한 상호간의 잦은 무력충돌 중 발생한 우발적 사건으로 묘사하고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독재와 부패, 친일의 상징으로만 왜곡하여 부각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전교조와 일부 서울대 역사교수들은 하나의 국정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시키면 우리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위축시키는 부정적 영향이 있고 ‘한국사 국정화=친일독재 회귀’ 라고 주장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본질에서 벗어나 미래 유권자를 선점하려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투쟁이며 전쟁으로 비춰지게 된다. 역사교과서는 유신시대와 5공화국의 전례처럼 정권홍보물이거나 정권에 반대하는 미래 지지층을 길러내는 교실이거나 둘 다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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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스스로 옳다는 신념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고 8종의 교과서 내용을 적극적으로 비교하여, 역사 교과서 논란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비교자료집을 작성하여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널리 배포하여 주길 제안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미래의 성장 동력인 청소년들이 패배적, 자기비하적 인식에서 벗어나 한민족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자긍심을 가질 올바른 한국사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역사교과서가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해 혼란스럽다. 국민은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스스로 옳다는 신념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고 8종의 교과서 내용을 적극적으로 비교하여, 역사 교과서 논란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비교자료집을 작성하여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널리 배포하여 주길 제안한다.
역사교육 관련 논란의 중심에 있는 친일, 건국, 6.25전쟁 등에 대한 기술에 있어 이에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학자의 실명을 들어 보조적으로 언급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정한 것이니 ‘통일적=획일적’ 이라고 매도하는 도식은 옳지 않지만, 어쨌든 사회 내에 이견이 있는 만큼 마치 법학에 있어 통설, 다수설, 소수설, 견해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기존 8종 교과서 집필진의 의견을 ‘각주’ 형태로 반영하고, 학생들 스스로 토론과정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학습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국정화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밖에서 시끄럽게 할 게 아니라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여 철저히 객관적 사료에 근거한 역사서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게 국론분열을 막고 국민통합을 위해 나가는 길이다. 국론분열이 교실에서 싹터서야 쓰겠는가?
역사교육은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과서 집필에 있어 역사학자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하기를 제안한다.
'역사적 사실(Fact)'이야 정확히 기술되어야 하지만 역사는 문화적 삶의 양식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이 반영됨이 미래지향적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가 8종, 10종 다양해야 다양성에 기반을 둔 창의적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등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국가정체성에 기반을 둔 올바른 교육을 하는 역사교사의 신념과 태도 그리고 창의적 학습법에 힘입는 바 크다.
그리고 연대기 순으로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암기하는 교육에서 탈피하여 어떤 가치들이 창조되었는지 교육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한민족의 가치창출 모습을 학습하면 좋겠다.
역사를 통해 침략과 전쟁, 지배계급과 민중의 투쟁역사도 배워야겠지만 역사적 순간마다 개인, 집단, 세력 및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여 개인의 삶과 국가의 발전을 도모 했고 문명을 발전시켰는지 학습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청동기 사회인 고조선이 철기사회인 한나라와 삼한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한 것과 청년 오퍼상인 김우중 회장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섬유수출을 한 것과의 연관성을 학습하는 식이다.
역사교과서에 과학기술, 문화예술과 산업경제를 단편적으로 기술할 것이 아니라 이들 간의 창조융합을 담자. 개인과 국가의 생존, 번영과 발전은 곧 가치창출(value creation)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태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