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자원관,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과 공동연구 수행
기후 변화 따른 재접촉 과정서 발생한 '잡종화' 원인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크리스마스 트리로 알려진 구상나무 유전체 분석을 통해 동해를 둘러싼 한반도와 일본, 중국, 러시아 지형을 따라 원형의 유전적 연결성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

   
▲ (왼쪽부터) 한라산의 구상나무, 설악산의 분비나무./사진=국립생물자원관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비슷한 기후의 북미에 비해 동북아시아에서 식물종이 다양한 이유가 지형의 복잡성과 신생대 기후변동 때문이라는 가설을 구상나무 종복합체 유전체 분석으로 증명했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2000년 일리노이주립박물관의 홍 첸과 미주리대학교 생물학과의 로버트 리클레프스는 네이처 지에 비슷한 기후의 북미에 비해 동북아지역 식물종 다양성이 높은 이유로 동북아시아 지형 복잡성과 신생대 기후변동에 의한 것이란 가설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구상나무는 제주도 한라산과 한반도 남부의 아고산대(지리산, 덕유산 등)에 사는 고유종이다. 

이 나무의 근연종에는 분비나무, 사할린전나무(홋카이도 및 사할린 서식), 베이치전나무(일본 고유종) 등이 있다. 분비나무는 구과(솔방울)의 비늘 방향이 아래로 향하지 않는 점만 제외하고 구상나무와 매우 흡사해 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하기 힘들다.

생물자원관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5개국 10개 기관이 참여한 구상나무, 분비나무, 사할린전나무, 베이치전나무의 유전체 변이 분석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공동연구 결과, 동해를 둘러싼 한반도와 일본, 중국, 러시아 지형을 따라 원형의 유전적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신생대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는 동안 이들 나무의 분포 범위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바다와 산맥 등 지형 특성이 나무 사이 접촉을 막아 분화된 종이 기후 변화에 따라 재접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잡종화가 지역별 식물의 다양성을 높인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중부지방 산지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모습이 매우 비슷한 원인 역시 마지막 빙하기(약 2만 년 전) 이후 한반도 온도가 상승하면서 종 분화 후 재접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잡종화 때문으로 확인됐다. 

또한 구상나무 근연종들의 모계 혈통에서 북미계열 나무 유전자가 발견돼 빙하기 동안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했던 베링 육교를 통해 유입된 북미계열 모계 유전자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나무 일부 집단에도 영향을 미쳐 구상나무 근연종 다양성에 기여한 것이 증명됐다. 

이번 공동연구 결과는 올해 하반기 국제학술지 '생물지리학회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서민환 관장은 "이번 연구로 명확히 증명된 바는 없었던 동북아시아 지역 식물종 다양성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종의 번성과 쇠퇴 등 역사를 추정할 수 있는 유전체를 지속해서 분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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