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만 9년여 근무…한-쿠바 수교 저지가 마지막 임무
외무성의 뇌물 요구와 당국이 자신의 병치료 거부에 망명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52) 참사(정치 담당)가 지난해 11월 초 가족과 망명해 한국에 정착해 있는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에서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았던 엘리트 외교관인 리 참사가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망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2019년 4월부터 지난해까지 쿠바 주재 참사를 지냈으며, 지난 2월 체결된 한국과 쿠바 간 수교 저지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망명 이유에 대해 외무성 대표부의 뇌물 요구 및 당국에서 자신의 병치료를 허락하지 않았던 사실을 밝혔다.

리 참사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후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부친을 따라 알제리와 쿠바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쿠바통’이다. 평양외국어학원에서 프랑스어를,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1999년 외무성에 입부한 이후 2011년 9월~2016년 1월 및 2019년 4월~2023년 11월 쿠바에서만 총 9년여를 근무했다.
  
그는 2013년 7월 쿠바에서 불법무기를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적발되자 파나마측과 교섭을 벌여 선박 억류를 해제시키고 선장과 선원들을 석방시켰다. 당시 청천강호에는 지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부품 등이 실렸으며, 이 공로로 리 참사는 김정은 표창장을 받았다.

그가 망명을 고민한 것은 2023년 7월 중순부터였다고 한다. 이후 11월 초 실행에 옮겼다. 망명 이유에 대해선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식당을 내려고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와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다”며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뤘더니 앙심을 품고 나를 소환하려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경추 손상으로 병을 앓게 돼 멕시코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요청했으나 불허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 격분해 ‘북한을 떠나려는 내 생각은 옳았다’고 확신했다”면서 “‘김정은 표창장’을 거실에 걸어두셨던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다 돌아가신 것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리 참사는 2016년 귀순한 태영호 당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이후 한국에 온 북한 외교관 중 가장 직급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탈북한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대사대리의 내부 직급은 각각 1등 서기관과 참사였다.

   
▲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 정무참사가 작년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사진은 2013년 파나마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로, 왼쪽이 리일규 참사 추정 인물이다. 2024.7.16./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마주앉아 대화해본 적이 있다고 밝히고,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을 것으로 보였다. 항상 술 마신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다. 화면에 나오는 것보다 더 붉어서 인디언 같다”고 전했다.
 
또 “김정은은 지난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보고 많이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김정은이 김평해 당 간부부장 겸 담당비서에게 우리도 여자를 대대적으로 써야 이제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가 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최선희 외무상 발탁과 관련해 “2018년 2월 연회에서 최선희 국장을 보게 된 김정은이 김평해 부장에게 ‘내가 여자들 쓰라고 한 게 언제인데, 이 능력 있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있어’라고 화를 냈고, 그 다음 날 최선희가 미국 담당 부상이 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정은의 딸 김주애에 대해선 “꼬마 때부터 김정은이 주애를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면서 후계자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절대 권위, 절대 숭배를 받으려면 신비함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노출시킬 대로 다 시키고 무슨 신비함이 있고 숭배감이 있겠나”라고 밝혔다.

한때 한국에도 잘 알려진 외무성 간부였으나 지금은 정치권에서 사라진 한성렬 미국 담당부상에 대해선 2019년 2월 12일 평양 강건군관학교에서 미국간첩 혐의로 총살됐다는 얘기를 전했다. 또 리용호 외무상에 대해선 2019년 12월 비리 혐의를 받아 일가가 정치범수용소에 갔다고 알렸다. 리용호의 경우 주중대사관 서기관 횡령사건 조사에서 그의 이름이 나와 김정은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직접 비판을 했다고 한다.

리 참사는 최근 김정은의 ‘남북한 2국가론’에 대해 “북한주민들은 한국국민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 그 이유는 못살기 때문”이라며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답은 통일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생각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최소한 지금처럼 거지처럼 살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로 답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반통일 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북한주민들의 통일 갈망을 차단하려는데 있다고 본다. 한류는 아무리 강한 통제와 처벌에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선대들은 최소한 통일을 제1국사로 책정해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만은 감히 빼앗지 못했는데 김정은은 이를 무참히 뺏어버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