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황희찬(울버햄튼)이 프리시즌 연습경기 도중 상대 팀 선수에게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억울함을 풀 길은 없어 보인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선수를 소속 구단이 감싸며 오히려 울버햄튼의 과민반응이라고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번 사건을 조사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울버햄튼은 지난 16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세리에A 다음 시즌 승격팀 코모 1907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스페인에서 전지훈련 중인 울버햄튼이 오프시즌 휴식을 취하고 온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가진 연습경기였다. 울버햄튼은 이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 황희찬에 대해 인종차별 발언을 한 선수의 소속 구단인 코모가 변명과 남탓만 하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사진=울버햄튼, 코모 공식 SNS


이 연습경기는 인종차별로 얼룩졌다. 황희찬은 후반 교체 투입됐는데, 후반전 23분께 상대 선수로부터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다. 이 발언에 황희찬의 팀 동료 다니엘 포덴세가 격분해 해당 선수에게 주먹을 날려 퇴장 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황희찬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계속 뛰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경기를 끝까지 소화했다.

경기 후 게리 오닐 울버햄튼 감독은 인종차별 발언을 한 데 대해 성토하며 "황희찬은 팀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황희찬을 다독였다. 울버햄튼 구단은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며  UEFA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과를 할 줄 알았던 코모 구단이 납득할 수 없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코모 구단은 이날 공식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는데, 변명 일색에 '뭘 그런 일로'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성명서에서 코모 구단은 "우리 수비수가 (황희찬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아봤다. 우리 선수는 '그(황희찬)를 무시해. 그는 자신이 재키 찬(성룡)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더라"라고 소속 선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울버햄튼 선수들이 황희찬을 '차니'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세계적 액션 스타 '재키 찬'에 빗대 애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 코모 구단은 "모욕적인 발언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우리 구단은 인종차별을 용납하지 않으며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하면서 "다만 울버햄튼 선수들이 보인 반응으로 사건이 과장된 것 같아 실망스럽다"며 이번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을 울버햄튼 선수들의 과잉 반응(황희찬이 화내고 포덴세가 펀치를 날린 것) 때문이라며 책임을 울버햄튼 쪽으로 떠넘겼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황희찬을 재키 찬에 빗댄 것 자체가 '동양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식의 전형적인 인종차별 발언에 해당한다. 얼마 전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농담으로 '손흥민이나 그의 사촌이나 비슷하게 생겼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인종차별 발언이라며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사과한 일도 팬들의 기억에는 생생하다.

코모 구단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 세리에B(2부리그) 소속이었던 코모는 지난 시즌 2위에 올라 1부리그로 승격, 2024-2025시즌부터는 세리에A 무대에서 뛰는 팀이다.

   
▲ 울버햄튼과 코모의 연습경기에서 황희찬에 대한 코모 선수의 인종차별이 벌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울버햄튼 SNS


더군다나 유럽축구를 총괄 관리하는 UEFA가 이번 건에 대해 조사할 의향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황희찬이나 울버햄튼,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 곻영방송 BBC는 "UEFA가 울버햄튼과 코모의 경기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는 친선 연습경기이기 때문. BBC는 "UEFA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경기가 UEFA 주관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하며 "UEFA 대변인은 축구에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우선순위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UEFA는 사건을 조사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한 선수의 구단은 '뭘 그런 일 정도로'라는 인식으로 선수를 감싸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내에서는 여러 매체들이 이번 황희찬 인종차별 사건을 다루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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