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한도 결정하는 'DSR 2단계' 도입 손놓고 금리만 연일 개입"
   
▲ 경제부 류준현 기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디딤돌대출·버팀목전세자금대출 등의 정책모기지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등이 주범으로 꼽힌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17일 기준 555조 7123억원으로 집계돼 지난달 말 552조 1526억원 대비 약 3조 5597억원 폭증했다. 5대 은행 주담대는 올해 상반기 22조 2604억원 급증했는데, 2분기(4월 4조 3433억원, 5월 5조 3157억원, 6월 5조 8467억원)에는 매달 증가폭이 확대됐다. 

이는 최근 거듭된 시장금리 하락 속 서울·경기 등 수도권 주택시장 거래가 회복하고 있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도입이 7월에서 9월로 유예된 까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주담대 폭증의 주범으로 꼽히는 정책모기지는 DSR가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여전히 적용해 실수요자에게 최고의 옵션으로 꼽힌다. 여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유행처럼 주택 매수행렬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빚투(빚내서 투자)'를 통한 내 집 마련, 이른바 '패닉바잉'이 다시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다'라는 기대감 내지 전망 때문에 사람들이 주택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이자율도 중요하지만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 또는 (누군가에게는) 공포 때문에 집을 사야하는 상황이다"고 작금의 현실을 진단했다. 

과거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때처럼 집을 가진 사람은 자산이 몇 배씩 뛴 반면, 전세로 살던 사람은 자산이 제자리에 있게 된다는 공포심이 크게 작용한다는 평가다. 언제 또 올지 모를 '막차'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

   
▲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17일 기준 555조 7123억원으로 집계돼 지난달 말 552조 1526억원 대비 약 3조 5597억원 폭증했다. 5대 은행 주담대는 올해 상반기 22조 2604억원 급증했는데, 2분기(4월 4조 3433억원, 5월 5조 3157억원, 6월 5조 8467억원)에는 매달 증가폭이 확대됐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하지만 금융당국이 언론을 통해 내놓는 가계대출 평가를 보면 실제 대출 증가세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지 의문을 갖게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매달 공동으로 내놓는 '은행권 가계대출 동향'을 살펴보면 "금리하락에 대한 기대감 지속, 주택시장 회복 가능성 등으로 인해 향후 가계대출 증가세의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반기 가계대출은 GDP 성장률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명목GDP 성장률 이내에서 가계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갈 계획이다." 등 비슷한 맥락의 의견을 거듭 내놓고 있다. 

이 와중에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장기 대규모 공급계획을 발표하는 동시에 "시장과열이 나타난다면 특단의 조치도 강구하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정부와 당국의 위기의식은 어느 정도 감지되지만, 그동안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그래서 가계부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오히려 정부와 당국의 발언이 "9월에는 못 사는 마지막 기회이니, 세일할 때 얼른 사세요"라는 식으로 읽히기도 한다.

"담보가치에 의존하기보다는 내실 있는 DSR 심사 등을 통해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릴 수 있도록' 차주의 상환능력을 엄정하게 심사하는 관행 확립도 매우 중요하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3일 17개 국내은행 부행장과 함께 한 은행권 가계부채 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가계대출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은행들이 '담보가치'보다 '차주 상환능력'에 기반해 대출심사에 나서달라는 당부다. 

하지만 당시 간담회를 전후로 은행들은 '자발적(?)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출수요를 억제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은 시장금리 하락 여파로 예금금리를 줄인하하는 반면, 대출금리는 억지 줄인상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은행들이 또다시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격차)를 통한 이자수익으로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정부와 당국이 대출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표명해야 할 때다. 문득 문재인 정부 시절 '가계부채 저승사자'로 불렸던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이 떠오른다. 당시 고 전 위원장은 '대출총량제'와 'DSR 규제 도입' 등 극단적 처방을 내놓아 대중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은행 지점별로 대출이 가능한 지 전화로 일일이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보금자리론도 막힐 수 있다" 등의 해프닝 외에도 "당국이 민간시장을 지나치게 통제해 은행의 먹거리까지 위협한다"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그럼에도 '가계부채 억제'라는 기조 속에서 일관적으로 펼친 강단과 노력만큼은 다시금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고 전 위원장은 DSR 규제를 예정보다 일찍 도입하면서도, 실수요자를 위해 전세대출을 규제에 반영하지 않는 등 유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시장에 가계부채 누증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실수요자의 주거문제는 최대한 해결하려 했던 셈이다. 

한동안 고금리 분위기 속 자산시장 거품이 일부 꺼지면서 "집값은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일명 '집값 하락론자'들의 주장이 인기였다. 여기에 전국적인 저출생 문제로 빈 집이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까지 겹치면서 '내 집 마련'은 곧 '자멸의 길'이라는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하지만 이 같은 국민 인식(주장과 분위기)이 시장금리 하락 속 정부의 주택·대출정책 등과 맞물려 불과 2년여만에 호떡 뒤집듯 뒤바뀌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시장(국민)에 좀 더 명확한 입장을 내놨으면 한다. '북핵 위협'처럼 겁만 주는 식의 조치가 계속되면, 국민의 위기의식 결여만 초래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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