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쿠바에서 9년여 근무하면서 지난 2월 체결된 한국-쿠바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탈북한 리일규 전 참사는 최근 체결된 북러 수교와 관련해 김정은의 전쟁 결심을 러시아가 후원할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리 전 참사는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해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조약을 믿고 김정은이 한반도 (무력) 평정을 결심하거나 푸틴이 그런 김정은 결심을 지지하거나 후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일보가 지난 18일 전했다.
그는 이어 “푸틴도 명백히 말했듯이 조약에는 ‘침략을 받았을 때’라는 조건이 걸려있다. 뒤집어 말하면 군사충돌이 실제 일어나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충돌 배경을 분석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라며 “한반도 전쟁이 터지면 24시간 안에 모든 것이 끝나버릴 텐데 언제 분석하고 언제 지원하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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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국내로 망명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가 인터뷰하는 모습. 2024.7.18./사진=조선일보 제공 |
그러면서 리 전 참사는 “결국 (러시아가) 북한을 적당히 구슬리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에 더 많은 무장장비를 공급받을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리 전 참사는 조약 명칭이 ‘동맹’이 아니라 ‘동반자’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분명히 북한은 동맹을 주장했을 것이고 러시아는 동반자 정도로 고집했을 것”이라며 “북한과 맺은 관계를 전방위적으로 영구적으로 확대 발전시키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의도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있어서 대러시아 및 대중국 관계를 수도꼭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물이 매일 졸졸 끊기지 않고 나오는 수도꼭지이고, 러시아는 이따금씩 물이 나오지만 한번 나오면 콸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라며 “이따금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를 믿고 졸졸 나오는 수도꼭지를 자를 수도 없지만, 매일은 아니어도 한번 나올 때 며칠분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도 결코 포기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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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국내로 망명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가 인터뷰하는 모습. 2024.7.18./사진=조선일보 제공 |
리 전 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북한의 고위 정책결정자들, 지도부에 건의하고 싶다”면서 “핵·미사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며 어느 날은 중국에 붙었다가, 또 어느 날은 러시아에 붙었다가 이런 식으로 체제를 하루살이 임시방편으로 유지하지 말고, 차라리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투명하게 모든 것을 열어놓는 쿠바의 길을 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관들의 탈북 동기에 ‘자녀 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외교관 자녀들은 해외에서 생활총화(상호 및 자아 비판)나 학습(사상교육)에 참여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현지 아이들처럼 생활한다. 발언이나 옷차림을 조심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북한에서처럼 행사나 무보수 노동에 동원되는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애들이 쑥쑥 큰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을 다시 북한에서 살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할 일인가 하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며 “해외에 자녀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평양으로 돌아와 학교에 입학시켜보면 북한에서만 살던 동급생 아이들보다 키가 5~10㎝ 크고 피부 때깔도 다른 것을 느낀다. 북한에서 먹기 어려운 고기, 우유 같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외국에서 섭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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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국내로 망명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가 인터뷰하는 모습. 2024.7.18./사진=조선일보 제공 |
한편, 그는 “쿠바는 북한 같은 독재국가는 아니다. 유엔헌장과 국제법 등을 존중하는 국제 관계의 표본 같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바에서 생각을 달리하거나 정부를 비난했다고 해서 처벌받던 시기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쿠바가 수년간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으로 선출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쿠바 간 수교에 대해선 “2022년 내가 이미 ‘쿠바가 경제가 어려워서 한국과 깜짝 수교한 베트남의 경험을 배울 수 있으니 수시로 상황 체크를 해야 한다’고 당에 보고했다”며 “외무성 간부들은 수교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당 간부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전했다.
리 전 참사는 이번 인터뷰에서 ‘북한과 해외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탈북이라는) 거대한 모험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면서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늘 그립다. (하지만) 북한에는 미래가 없다. 그 저주 같은 암흑의 땅을 버리고 밝은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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