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여러개 통째 잠겼는데도 김정은, "적은 변할 수 없는 적" 南비난
尹정부 2022년 코로나19 방역 제안 이후 두 번째 인도적 지원 제안
2012년엔 품목 협상 나섰지만…2국가론 주장해 수용 가능성 낮아
“中의 높은 방파제도 큰 원인, 북중 국경지역 공조가 더 필요한 상황”
“김정은 현장지도로 리더십 연출, 한국지원 받는 모양새 안 만들 것”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북한에서 발생한 수해피해 지원을 1일 제안했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국제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지원을 제안해 적십자사를 통한 남북 간 협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부의 대북 지원 발표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일 빠르게 반응,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말해 거부의사를 드러냈다. 

북한에선 지난달 27일 폭우로 압록강이 범람해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에서 4100여 세대와 농경지 3000정보를 비롯해 공공건물과 시설물, 도로, 철길이 침수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이로 인해 상당한 인명피해도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소집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고 말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고립위기에 처한 주민 5000명 중 공군비행기 등을 통해 4200여명의 주민이 구조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상세한 피해보도에 따라 정부는 즉각 대북 수해지원 의사를 밝혔다. 다만 현재 남북 간 통신선이 모두 끊긴지 1년 4개월째여서 정부는 언론브리핑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박종술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북한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견지에서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면서 “지원 품목, 규모, 지원 방식 등에 대해서 북한적십자회 중앙위원회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조속한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정부의 이 같은 제안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정은은 침수지역 주민 구출에 투입됐던 헬기부대를 2일 방문해 격려하면서 남한언론의 북한 피해 보도와 관련해 날조됐다고 비난했다. 지붕만 남긴 채 마을이 통째로 잠기는 등 인명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김정은은 남한을 비난하면서 민심이반을 막으려 하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보트를 타고 신의주시 침수 지역을 시찰했다. 조선중앙통신이 31일 공개한 사진에서는 군인 2명만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김 위원장과 김덕훈 총리 등 다른 인물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확인됐다. 지난 29~30일 신의주시 피해 현장에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진행되어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홍수피해에 대한 긴급 복구대책을 논의했다. 2024.7.31./사진=연합뉴스

사실 이번 대북지원 제안은 윤석열정부 들어 두 번째다. 지난 2022년 5월 16일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협력과 관련해 북한에 실무접촉을 제안했으나 북에서 무응답으로 일관한 바 있다. 또 우리정부의 대북 수해지원 제안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2011년에도 정부의 수해지원 제안이 있었으나 북한은 무응답했고, 2012년엔 북한이 물품 협상에 나섰다가 최종 지원을 거부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우리정부 제안에 품목 제안을 요청할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12년 당시를 보면, 정부가 9월 3일 북한에 지원 제안을 했고, 북한이 같은 달 10일 지원 품목을 요청했다. 이후 정부는 12일 품목을 제시했고, 북한은 13일 지원거부 의사를 밝혔다.  

만약 북한이 정부의 지원 제안에 호응해온다면 적십자사가 지원 주체가 되고, 지원금은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하게 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수해지원은 긴급구호 성격이어서 통상 직접지원을 해왔다”며 “특히 적십자사 수재민 대상 긴급구호 키트는 그야말로 신속한 지원을 위한 품목이었다”고 설명했다.

남북 간 품목 협의에 대해 이 당국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협의하는 경우도 있고, 전통문을 주고받으면서 협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명박정부 때인 2012년 당시 북한이 지원을 거부한 것은 노무현정부에 비해 4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 수준에다 식량은 컵라면이 유일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우리정부 제안에 무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남북관계를 적대적 2국가 관계로 규정한 상황에서 ‘동포애’를 내세운 정부 제안을 받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의 제안엔 북한주민의 생존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내포됐다”면서 “하지만 북한이 2국가론을 내세우고. 남북이 확성기 방송과 오물풍선으로 강대강 대결을 펼지는 상황에서 남한의 대북지원 제안이 수용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 통일부가 1일 수해를 입기 전인 올해 5월 8일 북한 압록강 위화도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 위화도와 인근 철로 침수 전후 비교 이미지. 2024.8.1./사진=연합뉴스[통일부 제공]

임 교수는 “이번 북한 수해피해와 관련해 오히려 북중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 입장에서 북중 국경지역에서의 긴밀한 공조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측 수해피해가 크게 발생하는 것은 중국측이 높게 쌓아올린 방파제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따라서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측에서 북한측에 수해물자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최근 북중 사이의 소원한 관계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속한 현장지도에 나섰고, 관료들을 질타하면서 리더십을 연출하는 중인 만큼 한국의 지원을 받는 모양새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정세를 감안할 때 정무적 판단이 적극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주장 이후 한국의 통일지향점, 남북관계 접근에 있어서 도덕적 우위를 상대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면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철저히 단절시키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상반기 40여회에 가까운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조만간 북한에 러시아와 중국의 인도적 지원 및 외교적 위로전문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며 “러시아는 북러 밀착을 과시하고, 중국도 북한과 불편한 관계라고 보는 시선을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위로전문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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