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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정 정치사회부장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본은 왜 자꾸 '만행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고 싶어할까. 한국인이라면 똑같이 느낄 이 의문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2015년에 이어 2024년에도 과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처우를 받으며 죽어갔던 일본 근대화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만드는데 동의했다.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사도(佐渡)광산이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의 의견일치를 얻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므로 '컨센서스 원칙'을 가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키를 쥐고 있었다.
그래서 한일 간 사전 논의도 있었다. 그런데 결론은 인권유린의 장소를 '어떻게' 등재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일단 등재한 뒤 '후속조치'를 논의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도광산 전시물에 '강제동원'이란 문구는 빠지게 됐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강제노동'(forced labor)이란 말 대신 '포스트 투 워크'(forced to work)란 표현을 쓰기로 하고, 이를 홍보하는 정보센터를 만들기로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에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정부가 한 약속을 명심하겠다고 한 만큼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서 일본정부가 '강제'란 표현을 거부했던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거짓해명을 한 셈이 됐다. 외교부는 국회 답변서엔 "강제란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측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강제'란 표현 사용을 거부한 일본정부는 대신 사도광산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을 매년 여는데 합의했다. 그런데 추도식을 열겠다는 일본측이 조선인 노동자 명부조차 제공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미쓰비시 기업은 조선인 노동자의 명부를 여전히 숨기고 있다.
사도광산은 일본정부의 징용에 일본인이 저항하니까 대신 조선인들이 동원된 곳이다. 사도광산에선 조선인 수백병이 폐에 석탄 분진이 쌓이고 몸속으로 돌이 들어가는 바람에 병을 얻어서 2~3년밖에 못살고 죽어갔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국내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자 13일로 예정된 우원식 국회의장과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면담이 일본측의 요청으로 연기되는 일도 벌어졌다. 우 의장은 지난 6일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정부가 용인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양국의 외교협상 과정과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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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2024.7.26./사진=연합뉴스 |
일각에선 일제강점기의 '강제성'은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사실상 인정받은 것이고, 이번에 사도섬에서 가장 통행이 잦고, 당시 미쓰비시 사무소 자리여서 상징성도 있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노동자들의 고난이 포함된 전시물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 일말의 성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군함도와 관련된 정보센터는 세계유산 등재 5년 뒤인 2020년 도쿄에 설립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광산 문제에 관심을 모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정부가 군함도와 사도광산 이외에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계획 중인 후보군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광산과 댐 등 300여개에 달하는 일본의 근대화 시설 가운데 조선인이 강제동원 된 장소가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도 몸서리쳤던 기록이 버젓이 남아 있는 과거 산업유산을 미화시키는데 일본이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전쟁국가 이미지'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로부터 시작된 세계유산 등재 작업은 일본 극우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을 해왔다. 한국을 근대화시켰고, 독립운동한 의사들은 불법 테러리스트였고, 그래서 일본은 억울하니까 헌법을 고쳐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일본 극우의 계획과 세계유산 등재는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사도광산 논의 과정에서 한사코 '강제'란 표현 쓰기를 거부한 것은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내각 때 각료회의에서 '강제노동'이란 말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때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도 쓰지 않기로 하고 그냥 '위안부'만 사용하기로 해 '정부 주도'를 희석시키고 '매춘'을 강조하기로 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각료회의 결정은 반영구적인 결정으로 일본정치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일본은 여전히 전쟁 중인 긴급 상황에서 일본국적을 가진 조선인을 징용한 것에 대해 합법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사카 교수는 또 "2015년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측의 배상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판결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며 "대법원이 일제강점이 불법이라는 점을 확실시하면서 당시 아베 정권이 강력 반발했다. 그런데도 윤석열정부가 제3자 변제안으로 일본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책무를 면제해주고, 여기에 사도광산 등재까지 합의해준 것에 어떤 배경이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일관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을 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일본인으로부터 "일본이 아무리 사과했어도 한국은 자꾸 사과를 재요구한다"는 말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말에 잠시 한국사회를 되돌아본 적도 있었지만, 역시 일본정치권의 사정으로 한일관계가 악순환되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 지금처럼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가 복원되고, 한일관계가 좋은 시기에도 일본의 과거사 미화작업은 지속되면서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민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극우세력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일본 보수정치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한국정부가 일본 산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에 계속 찬성해줘야 할까. 한일관계가 좋은 시기든 나쁜 시기든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과거사 정책엔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를 모래 위에서 다지고 있을 뿐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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