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민련 '부패 청산' 비판의 날…'새 정치' 용기에 거는 기대

[미디어펜=이서영 기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은 이미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3년 전인 2012년 여름 기습적으로 발간돼 전국 서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인데도 그렇다.

그때 책을 샀던 다수의 독자들은 중고서점에 이 책을 팔아버렸다. ‘소장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다. 대중들의 마음이 표변하는 것은 그토록 무섭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변한다.

‘안철수의 생각’에 그토록 많은 시선이 꽂혔던 이유는 그 생각이 바로 새로운 시대정신(時代精神)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보여준 ‘정치인 안철수’의 행동에는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기존의 제1야당에 포섭돼 들어가 버리는 순간 한때 이 시대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졌던 안철수는 그저 ‘평범한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 안철수 의원은 지난 20일 담화문에서 “당 소속 국회의원의 부패와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국민은 분노했지만 당 지도부는 거꾸로 감싸는 발언과 행동을 보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표현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에 대해 ‘정치탄압’이라며 반발한 친노 세력의 태도를 직접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랬던 안철수의 침묵은 길었다. 사람들은 그가 뭘 해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야당에서 밀어줄 대권후보로 여전히 거론은 되고 있지만 문재인, 안희정, 박원순 등의 이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이었다. 안철수 의원의 안색은 3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표정도 날카로워졌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2011년 10‧26 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양보’를 했던 인물이다. 온 국민이 아는 안철수가 기껏 해야 지지율이 10%도 안 나오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지 4년 만에 두 남자의 입지가 완벽하게 반전된 것이다.

또 한 번의 대선이 가까워오는 가운데 안철수 의원은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가 지난 20일 ‘대선출마 3주년 간담회’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는 이런 고민들이 담겨 있다.

담화문의 제목은 “부패와 단호히 싸워야 합니다”이다.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 같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가 말한 ‘부패 청산’의 칼이 새정치민주연합, 정확히 말해 친노 세력에도 향해 있다는 점이다.

안 의원은 담화문에서 “당 소속 국회의원의 부패와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국민은 분노했지만 당 지도부는 거꾸로 감싸는 발언과 행동을 보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표현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에 대해 ‘정치탄압’이라며 반발한 친노 세력의 태도를 직접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 3년이 30년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안철수 의원이 함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문재인 의원 등의 친노 세력과 합심해 결성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발언이다. 3년 전 급하게 맞이한 대선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안 의원은 문재인 대표와는 차별화된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 3년 전엔 그저 ‘반(反) 새누리당 기조 + 약간의 안보의식’ 정도의 개념으로 대선에 도전하는 듯 보였던 ‘어린왕자 안철수’는 세 번의 해가 바뀌는 동안 많은 것들을 느꼈던 것 같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이와 같은 견해를 밝힌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게 아니라 세력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른바 친노 세력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와 같은 거대 세력을 정적으로 돌린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안 의원은 담화문 말미에 “오늘 저의 부패척결방안은 계파를 떠나 당내 많은 분들에게 비난과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는 엄청난 강도의 비난과 비판이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3년 전엔 그저 ‘반(反) 새누리당 기조 + 약간의 안보의식’ 정도의 개념으로 대선에 도전하는 듯 보였던 ‘어린왕자 안철수’는 세 번의 해가 바뀌는 동안 많은 것들을 느꼈던 것 같다. 더 이상 그가 정치는 땅따먹기도 인기투표도 간 보기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 정치’를 하는 데 한걸음이라도 나갈 수 있기를 많은 국민들이 열망하고 있다.

안철수의 ‘새로운 생각’이 고질적인 무기력함으로 ‘야당보다 덜 못해서 승리’하기 일쑤였던 여당 새누리당에도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연일 연출되고 있는 수준 이하의 작태들이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안철수 의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나 ‘같은 편’의 명명백백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려는 그 용기에 대해서만큼은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