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자동차 업계 내 화두는 '전동화'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수요와 성장이 둔화되며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최근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까지 생겨났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의무화되면서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과제로 여겨지지만, 정체기를 맞은 시장은 각 기업의 극복 과제로 꼽힌다. 미디어펜은 전동화 전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전기차 화재 예방이나 후처리 등에 대한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최근 대형 전기차 화재로 무조건적인 전기차 혐오 현상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면서 전기차 지하 출입 문제를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전국 지자체가 충전율을 제한하거나 지하에 있는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18일 자동차업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전기차 화재 사고는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인천 전기차 화재가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가운데 지난 16일 오후 7시 40분께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노상에 주차돼 있던 테슬라 전기차에 불이 났다.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차종은 2018년에 출시된 테슬라 X 모델로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가 사용됐다.
◆ 전기차 시장 몇년새 폭발적 성장…안전책은 '미비'
전기차 시장은 정부의 보조금 등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지난해부터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잇따른 화재로 전기차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며 전기차 시장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만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대중화는 필연적인 미래라며 시장 침체 속에서도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확산에 따라 화재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이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는 총 121건으로 매년 2배가량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11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으로 늘었고, 2022년에는 44건, 지난해 6월까지는 상반기에만 42건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 관련 인명피해도 2021년 1명에서 2022년 4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6명이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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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오후 7시 40분께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노상에 주차돼 있던 테슬라 전기차에 불이 났다./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화재·폭발에 의한 전기차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담보) 사고 건수는 53건으로 전기차 1만 대당 0.93대꼴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8∼2022년에 발생한 사고 분석에서 화재·폭발에 의한 전기차 자차담보 사고 건수는 29건으로 전기차 1만 대당 0.78대 수준이었다.
최근 인천 대단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피해를 본 차주들의 자동차 보험사를 상대로 한 자차담보 처리 신청은 700대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전기차의 품질과 서비스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침체기)과 포비아라는 성장통을 극복하는 방법은 품질·서비스'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그간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혔던 것은 '가격'이었다. 내연기관 대비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잇따르는 화재로 '안전성'이 가장 큰 화두로 떠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전기차 화재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전동화 전환 방향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미래"라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품질과 서비스의 개선,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이 뒷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 범부처 대책 강구…9월 종합대책 발표 예정
그동안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 보급에 열을 올리던 전국 지자체와 정부는 대형 화재가 일어난 뒤 부랴부랴 충전율을 제한하거나 안전시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12일 환경부 주관으로 관계 부처 합동 전기차 화재 대책을 논의한 데 이어 13일에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전기차 안전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실현 가능성, 전기차 산업 경쟁력 등을 종합 고려해 개선 과제를 구체화하고 내달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먼저 정부는 전기차 소유주의 화재불안 우려 경감을 위해 전기차 특별 무상점검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 보급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모든 제작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화재대응 취약요인에 대한 조사와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긴급점검도 추진하는 등 단기적인 대책을 먼저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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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전기차 화재로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면서 전기차 지하 출입 문제를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대학교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지자체는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거나 충전율을 제한하는 등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는 과충전을 막기 위해 다음 달 말부터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충전율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주차할 수 있게 권고했다. 충남도도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율을 90%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지하 주차장의 전기차 충전시설 19대 중 9대를 이달 중 지상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뒤늦게 안전 관련 대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과 보여주기식 대책으로 혼동을 키운다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관련 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친환경 자동차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는데 중국산 배터리가 무조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이분법적 갈라치기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실현 가능한 현실성 있는 안전대책을 세워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재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충전 인프라 등 전기차와 관련된 전반적인 정책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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