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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2024년 광복절 기념식은 두 쪽이 났고, 폭염 속에 대한민국은 분란에 휩싸였다.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자신이 원했던 범주에 속한 인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광복회장은 이번 인사를 ‘건국절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하여 오히려 일본과 같이 가고 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에 대한 과도한 불신에서 나온 논리적 비약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 광복절 경축 행사에서 김진태 지사가 ‘1948년 건국’을 언급하자, 여러 단체들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전국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는 김진태 지사를 “역사에 기록될 친일 매국 망언”을 한사람으로 비판했다. 그의 발언은 ‘일본 식민 지배를 합법화’하는 ‘저급한 친일 매국적 역사 인식’이라는 것이다.
광복회 강원도지부와 민주당 강원도당, 강원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김 지사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역사적이고 논리적인 반론이 아니라 과도한 정치적 공세다.
김 지사는 “건국일이 1948.8.15라고 말했을 뿐 건국절에 대해선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광복절로 그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페이스북에 적었지만 김 지사의 축사에 비판적인 단체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확대 해석하면서 온갖 나쁜 말로 비난하고 있다.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김 지사가 밝혔듯이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는 말과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필연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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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1945년 8월 15일과 1948년 8월 15일은 8월 15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제의 강압적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1948년 8월 15일은 새로운 헌법에 기초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출범한 날이다. 우리는 8월 15일을 국경일로 정하여 광복을 기념하고 있다. 현재는 8월 15일이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년 8월 15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은 사회적 합의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럴 의도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도 신뢰하지 않는다.
광복과 건국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광복이 있었기에 건국이 가능했다. 광복과 건국은 연속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는 아무런 모순 없이 광복과 건국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묘한 갈등을 일으킨다.
상해임시정부를 하나의 완벽한 국가의 출범으로 보기는 어렵다. 상해임시정부는 국가성립의 3대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을 갖추지 못했다. 상해임시정부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지 못했고, 주권이 미치는 영토도 없었다. 실질적으로 한반도와 주민에 대한 통치권이 없었다. 주민들은 상해임시정부 헌법의 지배를 받지 못했다.
상해임시정부가 실효적인 국가의 역할을 못했고, 국가로서 충분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로 상해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반헌법적 일제 강점기를 합법화하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통해 임시정부를 건립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임시정부를 유지한 애국지사들의 피와 땀을 부정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서 우리는 상해임시정부에 충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우리 선조들의 처절했던 투쟁의 역사를 찬양할 수 있다. 독립운동과 건국은 갈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친일분자라거나 식민사관에 물든 자들로 매도하거나, 독립투사들의 열정과 희생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각인하는 것은 지나친 잘못된 처사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조상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이 땅에 펼쳐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꿈꾼 세상이 그들 모두에게 이념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좀 더 자유롭고,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2024년 8월 15일 전후로 전개된 여러 논란들이 이런 나라를 위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생산적 추진력이 되길 희망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광복을 기념하는 일이다.
[미디어펜=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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