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초기 전설적인 해군 영웅 데이비드 포터가 쓴 해양사 기록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건국 초기 미국, 영국에 대항하면서 태평양을 중심으로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해군의 전설적인 존재 데이비드 포터(David Porter) 남태평양 진출기를 기록한 '데이비드 포터의 남태평양 항해기(이하 항해기)'가 출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데이비드 포터는 해군인 아버지 슬하에서 나고 자라 16세 때부터 상선을 타기 시작했다. 18세에 장교 후보생으로서 콘스텔레이션호에 승선, 프랑스와의 유사 전쟁에 참전했다. 19세에 중위로 진급, 26세에 마스터 커맨던트로, 그리고 1812년 전쟁이 시작된 해인 32세에 함장으로 진급해 에식스(Essex)호를 지휘하며 전쟁에 참전했다. 1812년 바다로 나간 포터는 작은 영국 배인 얼러트(Alert)호와의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기도 한 인물이다. 

포터 이전에 나온 대부분의 항해기는 단순히 발견의 항해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보고서 성격이 더 강했다. 포터 역시 당초 이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포터는 발견의 항해를 넘어 갈라파고스 제도의 식생과 동물·지형을 찰스 다윈에 앞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갈라파고스의 인간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까지 기록하며, 앞으로 식민지를 경영한다면 어떤 작물을 어떻게 심는 것이 좋다는 제안도 남긴다. 

   
▲ 사진=대원사 제공


갈라파고스 제도와 워싱턴 제도 상세 기록 곁들인 19세기 남태평양 항해기

특히 칠레와 페루, 남태평양의 누쿠히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풍속과 습성을 호기심에 넘쳐 관찰하고 미국인과 비교하지만, 항해자 포터의 다양한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포터 항해기의 매력이다. 1815년 10월 31일, 포터는 미 대통령 매디슨에게 북태평양과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발견의 항해에 착수하자고 제안하는 편지를 직접 쓰는 적극성도 보인다. 

오늘날 태평양은 미국의 세계 정책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지역. 그렇지만 포터 당시의 신생 국가 미국은 자국의 영토가 태평양과 접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남양(南洋)’이라 불리던 태평양의 마르케사스 제도에서 원주민과 식민 전쟁을 벌였고, 미국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포터다. 포터는 대서양을 남하하여 남미의 끝인 케이프 혼을 지나 미 해군으로서는 최초로 태평양에 진출했고, 갈라파고스에서 적선을 나포하고, 워싱턴 제도 누쿠히바섬에 미국식 지명을 붙여 식민지 매디슨빌을 건설했으며, 타이피족과 전쟁을 벌였다. 포터는 미국 식민주의자의 원형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포터는 1815년과 1822년에 각 두 권짜리 항해기를 출판했다. 이 번역서는 이후 1823년에 한 권으로 나온 세 번째 판본(A Voyage in the South Seas, in the Years 1812, 1813, and 1814. with Particular Details of the Gallipagos and Washington Islands, London: Sir Richard Philips, 1823)이다. 구성은 1·2판과 같으나 장황한 설명은 빼고 정리되어 항해의 핵심적인 내용 전달에 용이하다. 원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포터 항해기의 특징은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와 워싱턴제도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곁들였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데이비드 포터의 항해기는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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