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지쳐 떠나는 의사들 못 잡아…전공의-전문의 배출 망가뜨려 정상화 불가능"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연휴동안 의료자원 한계, 더 심해져"…응답자 92%, '위기' 진단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오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사 부족에 따른 응급실 운영난, 일명 '의료대란'의 우려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군의관 투입 및 수가 보상 등 특별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그 실효성에 대해 물음표가 찍히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지금도 진료 차질을 보이는데, 일평균 1만명 환자는 응급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연휴 동안 의료자원의 한계가 더욱 심해져 갈 데 없는 환자들이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할 게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의사회 전문의 회원 503명이 지난 3~7일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92%가 현재의 응급실 운영난을 '위기' 또는 '심각한 위기'라고 답변했다. 응급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담당 전문의들이 '의료대란'을 내다본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4∼9일 국립대병원 7곳, 사립대병원 23곳, 지방의료원 14곳, 특수목적공공병원 10곳, 민간중소병원 7곳 등 의료기관 65곳 노조지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36곳의 응급실이 '겨우 버티고 있지만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병원 중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 수가 18명에서 6명으로 3분의 1로 줄어든 곳이 있었고, 11명 줄어든 곳이 2곳, 10명 줄어든 곳이 2곳 있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2024.9.4 /사진=대통령실 제공


정부는 추석 연휴 2주간 군의관 등 가용인력을 최우선 배치하고 재정을 투입해 응급실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추석 연휴 전후 한시적으로 진찰료, 조제료 등 건강보험 수가를 대폭 인상한다"며 "중증 응급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진찰료를 평소의 3.5배 수준으로 인상했다"고 전했다.

비상진료체계에 따른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150% 가산에 추가 100%를 더해, 비상 진료 이전의 3.5배 진찰료를 지급하는 조치다.

윤대통령은 이날 "부족한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군의관과 공보의, 진료 지원 간호사 등 가용 인력을 최우선으로 배치하고, 재정을 투입해 응급실 의료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며 "정부가 11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추석 연휴 비상 응급 주간'으로 운영하고, 당직의료기관을 지정해 연휴 의료 이용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이와 관련해 의사 160명 및 간호사 240명의 한달치 인건비인 응급의료기금 37억원을 투입해 응급의료진이 추가 배치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오는 추석 연휴 기간에 문을 여는 병의원은 잠정적으로 일평균 7931개소로 전망된다. 이는 올해 초, 설 연휴 기간 당직 병의원(하루 평균 3643개소)의 2.2배 수준이다.

관건은 응급실 현장에서 실제로 일할 전문의 인력이다. 정부가 당장 수가 보상을 올리고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더 이상은 지쳐서 못하겠다'며 떠나는 의사들을 붙잡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한 응급실 전문의는 이날 본보의 취재에 "현장에선 이번 추석 연휴 때 환자들이 얼마나 내원할지가 관건이라고 본다"며 "다만 확실한건 추석 이후라도 앞으로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다들 심각하게 번아웃되기 일보 직전"이라며 "전공의가 없어진 상태라 시간이 흐르면 전문의도 배출 안될 것이고, 결국 응급실 후의 배후진료가 무너져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당장 수가를 올린다고 해서 떠난 전문의들이 돌아오겠냐"며 "근본적인 원인이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이었고, 그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의사들이 현장을 떠난 것인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라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일 기준 전국 응급실 409곳 중 24시간 운영하는 응급실은 404개소로 집계됐다. 응급실 내원환자 수는 지난주 기준 1만 5217명으로 평시(1만 7892명) 대비 85% 수준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일주일간 추석 연휴기간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전국 각지의 응급실을 찾을지, 현장의 의료진이 소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