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엄마친구아들'까지 부드러운 눈빛과 귀청에 달콤하게 감기는 목소리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 정해인이 달라졌다.
맞춤 정장처럼 멀끔했던 얼굴은 섬찟한 미소로 극을 격렬하게 흔들었고, 안면근육의 작은 떨림만으로 러닝타임의 전반을 지배했다. '야누스의 얼굴'을 발견한, 강렬하고도 황홀한 시간이었다.
"류승완 감독님께서 박선우라는 인물이 가져가야 할 분위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존재만으로 불쾌함을 줬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것이 다른 배우들에게는 티가 나선 안 되고… 감독님과 저만 아는 수신호가 있었어요. 극 중반 넘어가고부터는 제 정체가 오픈되긴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정해인은 '베테랑2'에서 강수대에 새롭게 합류한 신입형사 박선우 역을 맡았다. 그는 직업상 경찰이자 '해치'로 불리는 비질란테로서, 전편의 조태오(유아인)와는 또다른 결의 빌런을 탄생시켰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태오는 절대악이죠. 발산하는 불같은 성질의 빌런이라면 저 같은 경우는 악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혼돈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굳이 설명을 드리면 차가운 쪽에 가까운… 촬영 때도 감독님이 조명감독님과 이야기하셨던 부분이 있는데 제가 안전가옥으로 전석우를 이송하는 장면에서 전석우는 빨간 조명으로, 절 파란 조명으로 보여주셨어요. 그것도 상징적인 의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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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2'의 배우 정해인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 ENM |
박선우의 전사가 드러나지 않다 보니 촬영 내내 류승완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해인은 "제가 '어떻게 캐릭터를 빌드업하고 서사를 채워나가면 좋을까요?' 질문을 드릴 때마다 그냥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현상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즐겼으면 좋겠다' 말씀해주셨다"며 "그리고 박선우라는 인물에 많은 사연과 서사가 생길수록 제가 표현함에 있어서 더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건 다 걷어내고 연기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박선우라는 인물은 나르시시스트적인 부분도 있고 소시오패스 성향도 있어요. 그 성향이 합쳐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관종기'도 있고요. 나의 목적과 원하고자 하는 방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를 도구로 이용할 수 있고, 계획이 틀어지거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가 터져나오는 반사회적 모습도 있거든요.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이긴 하죠. 가면을 통해 숨기고 있는 거죠. 연기하면서 그걸 가장 중점적으로 봤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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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2'의 배우 정해인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 ENM |
남산 계단 추격 신은 '베테랑2'의 명장면 중 하나다. 과격하고 속도감 넘치는 액션 신을 직접 소화한 정해인은 "액션은 많이 준비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힘든 건 없었는데,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며 "한겨울에 액션을 하는 게 뜻대로 되지 않고 몸도 굳어서 답답함이 있었는데, 화면상에는 잘 나온 것 같아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소리가 '끅끅' 나오더라고요. 얼굴을 찡그리게 되고. 4DX로 본 관객분들의 평을 봤는데 디스코팡팡 같았다고 말씀해주셔서. (웃음) 저도 4DX로 보고 싶어요. 체험을 한 번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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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2'의 배우 정해인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 ENM |
류승완 감독에게 '베테랑2' 출연을 제의받았을 당시 정해인의 반응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였다. 그는 "감독님을 만났을 때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가 아니었다. 만난 자리에서 3시간 가까이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저도 확신이 들었다. 감독님이 이 작품을 얼마나 고민하셨고 많이 준비하셨고, 이 캐릭터에 얼마나 애정을 쏟는지 알 수 있는 자리였다"면서 "처음으로 대본도 안 보고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빌런 역할인지 정확하게는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베테랑2' 출연 소식을) 듣자마자 기뻤고, 갑자기 몰려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이 부담이 없는 일은 없으니까… 그건 너무 감사한 일인 거죠. 대본 리딩할 때부터 신기했어요. 극장에서 봤던 선배님들과 실제로 대사 맞춰보는 이 자체가. 이상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첫 촬영이 너무 기다려졌고 설레었고, 약간은 두려웠어요.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 촬영 끝나고 황정민 선배님이 '해인아, 너 첫 촬영 잘했으니까 국밥에 소주 한 잔 할까?' 해서 첫 촬영 끝난 시간이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국밥에 소주 한 잔을 했거든요. 당시 선배님도 술을 안 드실 때였는데, 절 배려해서 시간 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한 기억이 있어요."
황정민과의 호흡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정해인은 "대단한 연기를 1열에서 직관하는 느낌이었다"며 "저도 그 에너지를 받아 연기할 수 있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보통 배우들이 상대 바스트로 카메라가 넘어가면 힘을 빼기도 하고 그러는데. 전 놀랐던 게, 황정민 선배님은 (자신에게) 카메라가 안 걸리는데도 제가 연기를 할 때 카메라 뒤에서 열연을 펼쳐주시는 거에요. 제가 연기를 잘할 수 있게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고. 연기를 한참 저보다 많이 하신 선배님으로서 귀감이 됐던 순간이 많았어요. 저도 30년 이상 연기를 한다면 나중에 후배와 작품을 했을 때 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했고, 매 촬영마다 멋있는 순간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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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2'의 배우 정해인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 ENM |
앞선 '베테랑2' 언론시사회 후 정해인의 강렬한 변신에 '동공 연기', '안광 연기' 등 강렬한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특히 소년성 짙고 맑은 눈망울로 보여준 광기는 차근차근 쌓아온 11년 연기 내공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타이트한 앵글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가장 거울을 많이 들여다본 작품인 것 같아요. 원래는 거울을 잘 안 봐요. 제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편하게 연기하는 스타일인데, 이번 작품은 그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조금의 시선 처리와 방향과 몇 번 눈을 깜빡이는지도… 잘못하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서. 가까이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습을 많이 했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시선이 머무르는 것이었어요. 분석하고 자료를 찾다 보니 몇 초 이상 사람을 쳐다보면 불쾌함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소시오패스 성향인 분들이 그런 모습이 있더라고요."
범죄자 프로파일링 자료까지 찾아보며 캐릭터를 치밀하게 쌓아올린 정해인.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집약된 작품이 '베테랑2'라고 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화면 속 정해인의 모습은 다채롭고 또 새로웠다. '베테랑2'는 캐릭터에 대한 정해인의 탐구정신과 연기적 성숙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전달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액션보다도 어려웠던 건 캐릭터를 제 것으로 체화하는 거였어요. 박선우와 정해인은 아예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제가 동기화가 돼야 하고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데, 찾아가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사연이 있거나 전사가 있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촬영 시간을 깎아먹어가면서까지 감독님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한 테이크 찍는 것보다 그걸 이해해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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