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27일 치러질 차기 자민당 총재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다양한 변수가 생겼다. 9명의 후보가 공식 도전장을 내면서 최다 후보 출마를 기록했으며, 이에 따라 결선투표를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14일 현재 등록을 마친 후보는 고노 다로(河野太郎·61) 디지털상,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9) 전 경제안보상,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3)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간사장,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68) 전 관방장관,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71) 외무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3) 경제안보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8)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 전 환경상 등 9명이다.
이처럼 다수의 후보가 나온 배경에는 공식적으로 자민당 내 파벌을 없앤 이유가 있다. 지난해 말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자금 스캔들로 당내 6개 파벌 중 아소파를 제외한 5개 파벌이 해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파벌 수장 또는 수장이 지지하는 사람만 후보가 됐던 지난 관행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총재선거는 결선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농후하고, 따라서 결국 의원들만 행사하는 결선투표에서 결국 파벌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총재선거 1차투표는 당원 367표, 당우 367표의 총 734표로 치러진다. 그런데 후보가 많은 만큼 표가 분산될 것이므로 한 후보가 50%의 지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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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일본 도쿄 자민당사에 총재 선거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2024.9.12./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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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수 표를 차지한 후보가 없을 경우 득표수 상위 2명이 같은 날 2차투표로 가게 된다. 결선투표에선 의원367표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인 도도부현(都道府県) 47표의 총 414표로 새로운 총재를 결정하게 된다.
일본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선거는 양강 구도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2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통신이 지난 6~9일 1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25.5%. 이시바 전 간사장은 24.2%의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이 뒤를 따르고 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의 차남이며, 43세의 젊은 나이로, 이번에 만약 총재로 당선된다면 이토 히로부미 기록을 깨고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준수한 외모를 갖춰 대중적 인기도 높은데다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의식해 ‘개혁’을 주장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민당이 야당이었던 2012년 총재선거에서 가장 많은 당원표를 획득했지만, 결선투표에서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아베파의 전신)가 미는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다. ‘젊은 사람은 안된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경륜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유리해진다. NHK가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이시바 전 간사장이 28%로 1위를 차지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NHK의 조사에서 9%를 얻어 3위였다. 아베 전 총리를 지지를 받던 극우 성향의 정치인으로 꼽힌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당내 우파의 거부감을 받고 있는 약점이 있고,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평소 가벼운 언행에다 향후 아홉 차례 진행되는 토론에서 약점을 노출할 수 있어 다카이치 경제안보상도 주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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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 신지로 전 일본 환경상이 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7일 열리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24.9.6./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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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부족에서 부적절한 발언 우려…측근정치하면 전향적 태도 기대 못해”
우리가 일본의 차기 총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시 한일관계의 향방 때문이다. 11월 미국 대선도 앞두고 있어 한미일 협력 강화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단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나 이시바 전 간사장 모두 온건보수로 평가받고 있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지율이 높은 후보자들 가운데 차기 일본 총리에 누가 되더라도 기존의 한국을 포함한 대외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총재에 당선될 경우 몇가지 리스크를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외교안보정책을 편 경험이 부족해 측근정치를 할 경우 젊은 총리 본인 의지에 의한 전향적인 태도는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또 한국 및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 나올 경우 한일관계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지속해왔는데, 현직 총리의 참배 문제는 한일관계에 새로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현직 총리의 가장 마지막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아베 전 총리의 2번째 임기 첫해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차기 총리가 될 경우 일찌감치 그를 공개 지지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부총재가 될 가능성이 커져 그의 영향력이 주목된다. 여기에 기시다 현 총리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을 지지할지 여부에 따라서도 향후 일본내각의 외교안보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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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오는 27일 열리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다. 2024.9.6./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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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은미 연구위원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과거 총리 시절 아버지의 언행을 따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다”며 “2002년 총리 시절 방북해 김정일 국빙위원장을 만났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처럼 북한과 직접 교섭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13일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현 내각의 외교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같은 세대이므로 전제조건없이 마주하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 일본의 총리가 바뀌어도 자민당이 오래 집권해온 상황에서 정치권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닌데도 최연소 젊은 정치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로선 일본의 새로운 총리가 한일관계 문제, 특히 과거사 문제를 매듭지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지 주목하게 된다.
오는 27일 선거에서 새로운 자민당 총재 당선자가 나오면 나흘 뒤인 10월 1일 총리직에 오를 전망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여당이 다음달 1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기시다 총리의 후임을 지명하는 방안을 조정하고 있다고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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