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담낭암 말기 투병…입원 한 달 만에 세상 떠나
7~80년대 민주화 운동 선봉…보수정당에 몸 담기도
[미디어펜=진현우 기자]'영원한 재야', '재야 운동권의 대부'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암 투병 끝에 22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담낭암 투병 중이던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35분경 입원 중인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건강 상태가 악화된 고인은 지난 달 국립암센터에 입원했지만 끝내 병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한 후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소식을 접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며 1995년에야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 지난 6월 7일 오후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옛 분도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7주년 기념 민통련 현판 제막식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자료사진)/사진=연합뉴스

1970년 전태일 열사 사망 당시에는 전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전 열사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고인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따른 수감 생활 등에도 민주화 이후 관련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고인은 지난 19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는 재야 세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 1990년, 그는 이재오 전 의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14·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선거(서울 영등포을), 17·19·21대 총선까지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지며 국회의원 배지는 달지 못했다.

고인은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에도 몸을 담은 바 있다. 

지난 2000년 보수정당으로 분류됐던 민주국민당 총선 비례대표 후보로도 나선 적이 있던 고인은 지난 2020년 미래통합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것에 이어 2021년에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으나 1차 경선에서 컷오프를 당하기도 했다.

3년 뒤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지며 조문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받을 예정이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 엄수되고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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