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상고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2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봤는데 SK 측에서는 비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도 비자금 관련해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실체가 밝혀지게 되면 대법원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
|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연합뉴스 제공 |
◆2심서 과도한 재산분할…최 회장 측 “300억 받은 적 없어”
23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은 현재 대법원 심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과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에서 665억 원이었던 재산분할 규모가 2심에서는 20배 이상 늘어났다.
1심과 2심에서 재산분할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 이유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공헌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2심에서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게 유·무형적인 도움을 줬다고 봤다.
특히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300억 원이 SK그룹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한 근거로 노 관장의 어머니인 김옥순 여사가 작성한 메모를 제시했는데, 이 메모에는 ‘선경(현 SK) 300억’이라고 적혀 있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SK 측에서는 300억 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즉시 상고를 결정했다. 아울러 2심에서 노 관장의 내조 기여도가 과도하게 계산되면서 재산분할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도 상고 이유로 꼽힌다.
2심 재판부는 계산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재산분할 비율은 수정하지 않은 만큼 상고심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계산 오류로 인해 주식 가치가 변하게 되면 재산분할 금액도 달라져야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300억 메모에 대해서도 “단순히 메모만으로 증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자금 흐름까지 확인돼야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서도 노태우 비자금 ‘예의주시’
최근 상고심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 관장 측이 증거로 제시했던 ‘300억 메모’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권 역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불법적인 비자금에 대해 환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3일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은닉에 성공한 비자금은 환수할 수 없는가”라며 “법적 개념으로 보면 소급 적용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정의를 세우는 문제와도 충돌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비자금은 환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로 유입된 150억 원도 비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현행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자는 “취임하면 정확히 확인하겠다고”고 답했다. 또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탈세 혐의에 대해 국민 의혹을 해소할 생각이 있느냐”는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도 “검찰총장이 되면 판단하겠다”며 조사에 대한 여지를 남겨뒀다. 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서 현재 검찰총장에 오른 만큼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조사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이달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해 “비자금이 세금 포탈이 되는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겠지만 포탈이 되면 수사·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겨냥한 법안도 발의됐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몰수법’을 발의했다. ‘헌정질서 파괴 범죄자’가 사망해 공소제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 수익을 모두 몰수하고 추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장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SK 300억원’ 등 추가 비자금 904억 원이 기재된 메모가 공개됐다”며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노태우 또한 비자금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 모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증거로 제출한 노 관장에게 악수가 될 수 있으며, 최 회장에게는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동안 SK 측은 300억 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메모를 바탕으로 조사가 시작될 경우 SK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해소할 수 있으며, 2심 재판부가 판단한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의 도움 역시 근거가 약해지게 된다.
또 메모에 적힌 300억 원이 실제로는 노 전 대통령 측이 SK에 요구한 자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비자금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재산분할 상고심에서 노 관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증거로 제시한 메모가 노 관장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