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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현 산업부 기자 |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기자 생활의 첫 취재 현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었다. 처음으로 참석했던 재판장에 삼성 로고가 새겨진 모니터였는지 노트북이었는지, 여하간 그것을 바라보는 판사를 보며 기분이 이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간 저 로고의 리더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이 회장은 복권이 됐다. 시쳇말로 ‘빨간 줄’이 사라졌고 그 모든 사건은 옛일이 됐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 일로 6년의 시간을 허비했고, 그 여파는 지금 세간에서 이야기 되는 삼성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기업인이 정치의 희생양이 된 그 희대의 사건이 여전히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1심 재판이 한창이던 2017년 7월, 오너 리스크는 최고조였지만 당시 삼성전자는 14조 원이라는 역대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재용 회장이 없어도 삼성이 잘 운영되고 있다며 이 회장의 부재를 폄훼했고 실제로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당시 실적은 5~6년 전 구상한 사업의 결과가 성과로 나타난 것 뿐, 향후 5년 뒤가 문제라는 진단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하는 반도체 사업이 지난해 말부터 부진을 면치 못하더니 급기야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부문 수장인 전영현 DS부문장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주가 하락과 경쟁력 우려에 대한 위기 극복의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삼성의 위기론에 불을 지폈고, 폭락하는 주가 역시 주식투자자들로 하여금 이재용 회장의 무능을 논하는 빌미를 주게 됐다. 여기에다 기업 익명 게시판에는 회사가 망할 것 같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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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미디어펜 |
다만 이 모든 책임을 이 회장에게 돌리기엔 그가 처한 상황 역시 여의치 않았다. 수감과 석방, 그리고 재수감이라는 희대의 코미디를 경험한 그가 기업 구상에 집중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이다. 장기간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채 생활했던 그가 무슨 수로 인사이트를 얻고, 트렌드를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아직 이 회장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다행인 건 국정농단이 한창이던 시절만 해도 이 회장이 여론 재판의 중심에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 국가의 격은 기업이 높인다는 것, 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라는 것은 상식이 됐다. 실제로도 삼성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인 게 맞다. 당장의 적자가 법인세 0원으로 연결돼 세수 부족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이를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에 대한 정책은 반기업정서에 기반해 있다. 지난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호에 불과했고, 법은 여전히 기업의 반대편에 서있다. 복잡한 정치권의 사정 때문이지만 국가 경쟁력이 달린 일에 찬반이 갈린다는 사실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돌아보면 그 어떤 정권도 기업에 우호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기업은 늘 희생양이었고, 규제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저력을 보여줘 “이러다 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머쓱해질 정도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정도인데, 뒷받침이 잘 된다면 얼마나 더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다.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이 여전히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부당합병 및 회계 부정 사건의 2심 재판 때문이다. 재판을 단 기간에 끝낸다고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이 안타까운 이유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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