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세기의 이혼 주인공으로 관심받던 시기와 달라진 점은 불법 비자금 주역으로 자리바꿈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소영 관장은 최근 두문불출하며 쏟아지는 비자금 의혹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혼 소송 2심을 승리로 이끌었던 300억 원 메모는 ‘신의 한수’에서 절체절명의 ‘악수’로 바뀐 듯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씨가 남긴 300억 원의 메모에는 총 900억 원에 달하는 액수가 적혀 있어 돈의 출처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인한 추징금 2628억 원을 냈음에도 여전히 출처가 모호한 자금이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김옥숙 씨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900억 원의 출처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여전히 추정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 2013년 김옥숙 씨는 추징금을 갚는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며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이력이 있다. 당시 미납한 230억 원을 "낼 돈이 없다"며 이를 납부하기 위해 차명재산을 언급한 것이었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 측 일부 자산과 사돈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서울센터빌딩이 노 전 대통령이 맡긴 비자금으로 샀다고 주장했다.

이후 계속 소송공방이 오고 갔고, 최종적으로 그 230억 원의 미납 추징금을 동생과 사돈이 나눠 내는 걸로 결론이 났다. 결국 법원이 이들의 재산을 노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동생과 사돈에게 맡긴 차명재산을 대신 추징하게 하려는 꼼수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있었다. 김옥숙 씨가 차명재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전부였지만, 최근 밝힌 메모에 있던 9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받을 돈 혹은 맡긴 돈”이라 지칭한 것을 볼 때, 만에 하나 메모에 적힌 300억 원을 당시 선경이 정말 받았더라도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10여년 전에 차명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최근 900억 원 상당의 메모가 추가로 나온 만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숨긴 차명재산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이제 추정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미 의심되는 부분만 해도 메모의 900억 원뿐 만 아니라 동아시아문화재단 147억 원, 노태우 재단 5억 원,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해외 은닉 부동산으로 추정되는 것까지 상당한 규모다.

차명재산이 아니라면 메모의 형태를 볼 때 김옥숙 씨가 사채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실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사채 시장은 명동 큰 손들이 주도해왔었는데 재벌 회장들 역시 사채의 자금을 빌려 기업을 키우기도 했다. 다만 1972년 8월 3일 정부의 사채동결 조치가 이뤄지면서 메모지에 존재했던 시기에는 사채업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차용증 등 증거 자료가 메모 한 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채 성격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옥숙 씨의 경우 나무위키의 정보가 맞다면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에 진학할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었고, 대학 중퇴 후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결혼을 했었다. 즉 집안이 부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메모 속 900억 원의 자금은 어디서 난 것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회 소속 군인이었으며, 이후 정치를 했다. 군인과 정치로 큰 돈을 버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불법 비자금의 일환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빌려준 돈이든 차명재산이었든 간에 불법 은닉 비자금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분명하다.

   
▲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연합뉴스

여기서 또 하나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과연 메모 속 300억 원이 당시 SK에 건네진 돈이 맞느냐는 부분이다. 현재 SK측이나 김옥숙 씨 측에도 증빙 서류나 차용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증인들이 말하듯이 이 돈은 SK에 건네진 돈이 아니라 SK가 노 전 대통령 은퇴 후 활동비로 지급하기로 한 비용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는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의 진리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돈은 ‘경에서 정으로 흐른다’ 결국 경제계나 재계에서 정치 쪽으로 돈이 흐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인기 드라마였던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 진도준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인 진양철이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에게 돈을 줘야할지 고민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드라마에서 진도준은 2~3위는 절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며 1위(노태우)에게 돈을 주라고 권했다. 

단지 드라마적 설정이라고 하지만,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정치는 생산을 담당하는 분야가 아니기에 돈이 나올 수가 없다. 생산을 담당하는 경제 쪽에서 정치로 돈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다. 

만약 이 돈이 정말 SK에 건네진 것이라면 출처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필요하다. 

노소영 관장은 이번 사태가 이혼 소송과 결부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이다.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이혼과 별개로 처리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쩌면 최종심이 끝나고 추징금이 부족했다면 더 내겠다라는 속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혼 소송에 결정적 근거로 내민 카드가 불법 비자금이라면 이혼 소송과 별개로 진행할 문제가 아니다. 

노소영 관장은 세기의 결혼에서 가정사의 아픔이 있는 불운의 여인이라는 국민들의 측은지심을 스스로 버렸다. 최소한 국민들의 안타까운 심정과 신망, 그리고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는데 선을 넘어버린 듯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은 첫 직선 대통령이라는 영예가 아닌 불법 비리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더 크다. 노소영 관장도 돈 욕심으로 인해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