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 내역이나 차용증 없이 300억 메모가 증거…증거채택 판사 재량
SK 측은 “오히려 노태우에 지급했다” 주장…상고심 ‘예의주시’
[미디어펜=박준모 기자]재계 내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나온 ‘300억 메모’가 증거로 불충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메모에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있었는데 2심 재판부는 이를 결정적인 증거로 봤다. 하지만 300억 원의 정확한 전달 방식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 메모 한 장으로 대규모의 재산분할을 결정하기에는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SK 측은 메모에 적힌 300억 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사진=연합뉴스 제공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의 정식 심리 여부가 다음 달 8일 결정된다. 이 결정으로 더 심리할지 기각할지 판가름 난다. 

통상 이혼소송에서는 상고심 기각 비율이 높지만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상고심은 기각보다는 심리를 더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산분할 1조 원이 넘고 노태우 비자금 관련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다. 

노태우 비자금은 이혼소송 2심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1심에서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에서 노 관장은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다. 2심 재판부는 이 메모가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결국 1심과 2심의 재산분할 규모가 달라진 이유는 노 관장이 제시한 김옥숙 여사의 메모 때문이다. 이 메모에는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있었는데 2심 재판부는 이 문구를 보고 SK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최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300억 원을 받았고, 이 자금이 SK그룹에 흘러 들어가 성장에 기여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재계 내에서는 단순히 김옥숙 여사의 메모 만으로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옥숙 여사 메모와 50억 원 어음 6장을 결정적인 증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증거재판주의에도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증거재판주의는 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법률원칙이다. 아직 300억 원의 정확한 전달 방식 및 사용처도 밝혀내지 못했고, 차용증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메모 한 장으로 증거를 채택한 것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차용증이 없으면 입금 내역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회사가 성장하는데 결정적 단초가 됐다면 회사 차입금이라든가 비용으로 납입된 기록이 있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2심 재판부가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증거로 채택한 것에 의문이 있고, 어떠한 이유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돈이 오고 간 증거가 없는데 단순 메모와 어음 6장으로 1조 원이 넘는 거액의 재산분할 판결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비자금이 SK그룹 측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봤다면, 대규모의 재산분할이 아니라 빌려준 당사자에게 원금 300억 원과 함께 20여년 치의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 더 옳다”고 덧붙였다. 

SK 측은 그동안 300억 원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SK 측에서는 오히려 50억 원 어음 6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퇴임 이후에 활동비를 주기 위해 약속한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도 속속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윤석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일절 SK에 도움을 준 사실이 없다”며 “1995년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선경에서 받은 어음을 사용할 시기를 놓쳤고, 김옥숙 여사(노 전 대통령 부인)께서 현재까지 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확약하는 증표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선경건설 명의의 어음이 전달됐다”고 언급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처럼 노 관장이 증거로 제출한 메모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노태우 비자금 관련해서 자세히 조사하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사를 통해 SK 측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노 관장이 거액의 재산분할을 받을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재계 내 한 관계자는 “300억 메모를 증거로 보기에 모호한 점이 많은데, 증거 채택에 대한 재량이 판사에게 있다 보니 2심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며 “SK 측의 주장과 노 관장의 주장이 서로 엇갈린 만큼, 증거에 대해서도 좀 더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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