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1일 리버티홀에서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중동 근로자”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자유경제원은 대한민국이 이룬 기적 같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찾아 그 경제적 효과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연중·연속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날은 지난 파독근로자, 구로공단, 베트남 파병 관련 토론회의 후속이었다. 차후에는 평화시장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다. 이 날 토론회는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사회,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의 발제, 강신영 과장(전 럭키개발 구매과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의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아래 글은 한정석 편집위원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중동해외건설 - 영혼이 있던 시대
21세기 ‘IT 덕수’ 들을 육성해야

1970-80년대 중동해외건설 수출기는 그 이전의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와는 달리 우리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정부 관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경제기적을 일구었던 ‘영혼이 있던 시대’라 평가할 만하다.

한국의 해외건설 수출은 1965년 9월 540만 달러의 공사로, 대림산업이 베트남에서 처음 시공한 락지아 항만 항타공사의 수주이며 올해 50년이 2015년에는 누적 수주액이 7000억 달러(약 791조원)를 돌파했다. 지난 2015년 6월4일 삼성물산은 9억 호주달러(6억9407만US달러)에 달하는 호주 도로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이러한 역량의 배경에는 바로 중동해외건설이 있었다.

1974년 해외건설 수주액은 2억6000만 달러였으나 이듬해 1975년에는 226.3%나 늘어난 8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중동 송출 근로자 수도 늘어나 매년 10만 명의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일했으며 대형 건설사들은 자체 직업훈련소를 만들어 기능공 양성에 주력했다.

정부는 해외진출 기능사에게는 군복무 면제, 기능사 자격증 부여, 최고 연봉 등의 특전을 제공했다. 정부 입장에서 중동 인력 송출은 오일쇼크를 타개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벌인 정책이었다. 외교관들이 비즈니스맨이 되고, 건설기업 임원들이 외교관이 되던 시대였다. 1)

   
▲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광부였던 덕수들은 중동에서 ‘건설 덕수’들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들의 꿈은 ‘자기 집’을 소유하고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녀를 가진 4인 가족에,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일명 ‘고과장’이다. 그러한 꿈의 기회가 중동해외건설로 다가왔다./사진=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이들이 뜨거운 사막 열기와 맞서 싸우며 건설현장에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1970년대 총 외화 수입의 85%를 차지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는 이들의 송금액이 62억 달러에 달했다. 대개 중동근로자들은 월급의 5%만을 현지에서 소비하고 나머지 90%이상을 송금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가 벌어들인 전체 외화의 50%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들 중동 근로자가 송금한 외화는 오일쇼크를 견디게 했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나와 가족을 위해 일했던 애국자 ‘중동의 덕수들’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광부였던 덕수들은 중동에서 ‘건설 덕수’들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들의 꿈은 ‘자기 집’을 소유하고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녀를 가진 4인 가족에,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일명 ‘고과장’이다.

그러한 꿈의 기회가 중동해외건설로 다가왔다. 대개 3년을 계약으로 중동에서 일을 하면 집한 채는 마련할 수 있다는 꿈이 중동건설인력 붐을 일으켰다. 이들은 현지에서 부지런함과 성실, 그리고 현지 아랍인들과의 친화로 발주국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78년 8월 9일 <매일경제>는 미국의 볼티모어 SUN지가 보도한 ‘근면한 한국인, 중동에서 인기’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SUN지는 한국 근로자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이라는 평가와 함께 주재국이나 감독기관에 불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동시에 아랍인들과 친화력을 발휘해서 다른 국가의 근로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쟁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1978년 8월 9일 <매일경제>는 미국의 볼티모어 SUN지가 보도한 ‘근면한 한국인, 중동에서 인기’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사진=자유경제원 자료집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며 안락하고 풍요로운 만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희망은 노동자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 그 체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2)

실제로 중동파견 근로자들은 일당으로 하루 10-12시간씩 근무하였으나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1980년 국내 정치불안에 우려를 표하며 안정화를 촉구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바로 ‘희망’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동근로자들은 열악한 현지에서 ‘자조’정신과 애국심의 함양으로 이후 건실한 대한민국 중산층의 여론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개인들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파독광부들과 중동근로자들의 경험은 모두 ‘잘 살아보겠다’ 는 사람들의 자기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국 인간은 국민성을 초월해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현실개선’이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따라서 국민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라 하겠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경제의 성장 외에는 답이 없다.

아울러 중동해외 근로자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언제나 소득은 수요에 부응하는 생산으로부터 나오며 소비는 그것을 확인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지출을 통한 소비진작 위주의 케인즈식 경제정책은 진정한 소득증가 정책이 아니다. 경제정책을 생산자 중심으로 혁신을 일으켜야만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제언 : 21세기 지식근로자, ‘IT덕수’들을 양성하자

1960년대 파독광부와 1970-80년대 중동근로자는 이제 우리 경제가 리바이벌 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식과 기술로 고부가가치를 낳고 생산효율이 소득을 늘리는 ‘지식산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제는 해외 지식산업인력 수요에 대비한 ‘IT 덕수’들을 집중 육성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혁신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으며 산-학협동의 자율성과 교육의 자유화를 통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교육과정에서 가능한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정희 정부는 중동에 오일머니가 쌓이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이미 중동건설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외건설촉진법과 함께 1975년 대형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해외건설 주식회사(KOCC)’를 국내 25개 건설사 컨소시엄으로 설립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처럼 미래 지식산업의 물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법들을 신속히 개편하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철회함으로써 현재 중소, 중견기업들이 더 많은 대기업들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1) <해외건설50년, 덕수가 있었다> 건설경제 신문.

2) 아담스미스 <국부론> 유인호 譯 제8장 ‘노동임금에 대하여’ 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