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엘리트층도 트럼피즘 수용 결과, 미국의 불확실성 시대 도래”
‘아미시’ 공동체 첫투표 등 종교단체지지 현상…경제·이민정책 관건
방위비·주한미군·확장억제·칩스 등 변화가 한미관계의 당면 과제
12차 SMC 국회비준 시급…북미대화 시 ‘허술한 핵협상’ 중대 위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30년 이래 가장 불확실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시기를 맞아 특히 북핵을 둘러싼 역내 안보환경이 더 어려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의 대폭 인상,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 증대 요구, 미국과 중국 간 디커플랑 심화 등이다. 
한미관계에서 당면한 문제는 지난달 4일 타결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에 대해 재협상 요구, 주한미군 철수 및 축소,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체결된 워싱턴선언으로 구축된 핵확장억제력 약화이다. 또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및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폐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트럼프가 중국과 벌일 ‘관세 전쟁’에 따른 리스크가 주목된다.
우리정부도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하는 긴급 경제·안보회의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대선 결과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아닌 ‘미국의 불확실성 시대’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2기’ 정부를 출범시키게 된 결정적인 배경에 ‘경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미관계의 장래를 위해 이번 미국대선을 잘 분석하는 것이 첫 대응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미국국민을 인종별로 나눠볼 때 라틴계에서 트럼프를 찍은 사람이 13%가 더 많고, 흑인 중에서도 5%가 더 트럼프를 선택했으며, 심지어 흑인남성 4명 가운데 1명이 트럼프를 지지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이번 미국대선에선 인종이나 젠더 이슈가 부각되지 못할 만큼 경제 문제, 이민정책 등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트럼프의 공략이 성공한 것이다. 

8일 안보전략연구원과 화정평화재단이 공동주최한 ‘2024년 미국대선 결과와 역내 안보환경 변화 전망’ 학술회의에서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회장은 “트럼프가 여러 종교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낙태 허용에 반대하는 카톨릭을 비롯해 유대교, 무슬림에다 과거 투표하지 않던 ‘아미시’(Amish) 공동체가 처음 나섰다“고 말했다. 아미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현대사회와 단절한 채 18세기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원리주의 개신교 교파 공동체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재당선은 트럼피즘이라고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를 미국의 엘리트층도 수용한 결과라는 진단도 나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미국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행사에 참석해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 윗부분에 거즈가 붙여져 있다. 2024.7.19./사진=AFP·연합뉴스

고명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하이브리드위협연구센터장은 학술회의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지금까지의 미국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다. 이제 미국의 엘리트층도 트럼프가 제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제 미국의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한미동맹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트럼프의 생각엔 미국이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가치·규범이 일치된 동맹이 아니라 이익공동체로서의 파트너십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또 “그래서 트럼프는 이익만 맞으면 중국, 러시아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정부도 트럼프 행정부와 핵심이익이 부합되는 쪽으로 전략을 추진해야 한미관계가 잘 유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카멀라 해리스 진영의 전문인력 풀이 넓고 깊은 반면, 트럼프 진영은 그렇지 않다. 그런 만큼 트럼프 당선인이 개인적인 야심으로 대북정책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만, 트럼프 진영 차원에서 한반도정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이전까지 우리정부가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공개하고, 트럼프측과 소통하면서 아젠다 세팅의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경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학술회의에서 “트럼프정부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려고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정치와 경제 영역을 넘나드는 협상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조선업 협력과 한국기업의 투자 및 일자리 창출 등 반대급부를 활용한 협상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요구하는 대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100억 달러로 인상하려면 1966년 체결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를 개정해서 새로운 예외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우선 정부는 바이든 정부에서 타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C)의 국회비준을 신속하게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로카우스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화정평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에서 주요 연사들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새로운 안보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2024.11.8./사진=연합뉴스

박 교수는 “트럼프 2기에서 주한미군 조정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고립주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동맹국에 대한 책임비용을 줄여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므로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다만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도 미룰 수 없는 현실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에서 가능성이 높아진 핵대응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럼프의 재당선으로 예상되는 북미대화와 관련해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학술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2019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언급,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당선인에게 격노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협상) 의지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등을 포함해 크게 양보하지 않으면 김정은이 다시 협상에 나올 가능성이 낮다”면서 “(하지만)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한미 간 디커플링을 이루는 것이다. 김정은이 정보유입이라는 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젊은군인들을 러시아에 파병하고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현욱 세종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2기에 한미동맹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앞으로 북미가 허술한 내용의 핵협상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핵보유국 인정이지만 트럼프가 인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는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김정은을 설득해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나 핵시설 신고와 사찰 및 검증이 쉽지 않아 북미 간 딜(deal·합의)은 상당히 허술할 것이다. 이런 허술한 합의가 한미동맹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 간 조선업 협력에 대해서도 “미국 내 노조 등의 반발이 거셀 것이어서 쉽지 않아 보인다. MRO(군함·선박의 보수·수리·정비)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무엇보다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 일본 내 반핵 여론이 강해도 일본의 엘리트층과 정치인들은 역내 중국의 핵사용에 대한 우려가 높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과 협력해 트럼프 정부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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