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영화감독 이진영의 영화와 책 동시 선보이며 화제와 감동
리처드 용재 오닐 등이 하와이 풍광과 함께 음악 영화로 승화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제작 노트' 책으로 감동의 여운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121년 전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조선인 102명. 그들로 시작된 코리안 121년 한민족 이주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가 121년 역사에 절절히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하와이는 흔히 아름다운 신혼여행지 정도로 알려졌지만 유구한 우리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이민 선조들이 살았던 곳, 하와이에 서려 있는 선조들의 깊은 사랑을 만국 공통어인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회초년생. 이진영 감독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라는 환상의 섬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에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보였던 것은 아니다. 

   
▲ 영화 '하와이 연가'의 연출자이자 책 '하와이 연가'의 저자인 이진영 감독. 기자였고, 아나운서였던 그는 한인 미주 이민사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사진=나우 프로덕션


‘충동’이 이끄는 대로 자리잡은 하와이

그는 말로만 들었던 지극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 순간을 ‘충동’이라고 말했다. “그래, 이 지상의 낙원에서 한 번 살아보자. 이곳의 풍광을 눈뿐 아니라 사진에도 담고, 글로도 써보자.” 그렇게 그의 ‘숨 막힌 충동’이 시작됐다. 처음의 하와이는 이진영 감독에게 그런 ‘충동’이었다.

‘충동’이 이끄는 대로 그는 하와이에 자리를 잡았고, 하와이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화여대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잡지사 기자로 기사를 썼던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환상의 여행지’ 하와이를 소개하는 책도 썼고, 하와이 현지 방송국에서 하와이를 알리는 방송도 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어떤 결핍을 느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목마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그 어떤 이민자들도 한 번쯤 겪게 되는 그런 것. 제 아무리 한없이 아름다운 하와이라도 이민자의 신분은 그랬다. 정서의 결핍, 정체성의 결핍, 사람에 대한 결핍…. 이 감독도 그저 그런 것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하와이 한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고 김창원 회장으로 시작된 이야기

이 감독이 하와이 현지 방송사에서 근무할 때 그는 운명처럼 고 김창원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하와이의 한 건축회사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그 회사의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의 인물이다. 하와이뿐 아니라 미주 전체에서 한인 최초 주립대학교의 이사장을 지냈고, 하와이에 최초의 한인 은행도 설립했다. 그는 평생 한국과 관련된 기부를 해왔기에 하와이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유명하다.

   
▲ 영화 '하와이 연가'는 음악이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그 처음과 끝을 같이 했던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프랑스 이민자인 이그나스 장. 영화의 한 장면./사진 나우 프로덕션

   
▲ 미국 그래미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영화 합류는 이진영 감독에게는 감동의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의 한 장면./사진=나우 프로덕션


이 감독이 고 김창원 회장을 인터뷰 했을 때 그는 물었다. 평생 그토록 많은 기부를 하며 살 수 있었던 동력이 뭐냐고. 김 회장은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감독에게 처음 하와이에 이민 온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건 121년 전부터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소개하던 그가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시작된 조선인들의 하와이 이민사에 천착하기 시작한. 그전까지 막연하게 하와이 이민사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그건 한국의 학교에서도 아주 조금은 역사 시간 배우는 부분이기도 했기에.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이 감독이 알고 있는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사는.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김창원 회장을 비롯해 하와이에 대대로 살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하와이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질문하는 일 또한 기자 출신인 이 감독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숱하게 묻고 다니고, 찾아다니고, 들춰본 첫 결과물이 2021년 완성한 독립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이다. 그리고 이진영 감독은 기자와 아나운서를 거쳐 독립영화 감독이 됐다.

다시 3년 여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이 감독은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심화시켰다. 또 아름다운 음악을 입혀서 더 영화스러운 모습으로 꾸며 고국을 찾았다. 인터뷰 중심이었던 다소 투박한 그의 첫 하와이 이민사가 한 편의 수려한 음악 영화가 돼 본향을 찾은 것이다. 영화 ‘하와이 연가’(나우 프로덕션 필름 제작)다. 

독립영화 감독의 험난한 길에서 '하와이 연가'

영화가 지난 30일 국내에서 개봉되기 전부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난 달 23일 용산에서 시사회를 열었을 때는 언론뿐 아니라 정관계와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감독이 ‘하와이 연가’의 국내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바 있는 배우이자 소설가인 차인표는 이날 VIP 시사 후 “우리 역사는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어려운 시절을 뚫고 살아온 수많은 분들의 사랑과 노력 덕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며 “‘하와이 연가’는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음악을 통해 일깨워 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제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며 이 감독을 응원하기도 했다.

   
▲ 하와이안 슬랙키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케올라 비머(왼쪽)와 이그나스 장(가운데), 그리고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은 영화 '하와이 연가'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의 한 장면./사진=나우 프로덕션

   
▲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인 '할머니의 놋그릇'은 실제 사진 신부가 돼 하와이로 결혼 이민을 갔던 임옥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감독은 배우 예수정 씨가 임옥순 할머니의 목소리 연기를 해줌으로써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한 장면./사진=나우 프로덕션


또 지난 달 28일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이용선 이강일 차지호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주최해 ‘하와이 연가 시네마 정책 토크’라는 다소 무게감 있는 행사도 열렸다. 

이 행사의 인사말에서 국회 외교통일위원이기도 한 이재정 의원은 “한인 이민자들은 역경 속에서도 강한 의지와 희망으로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렸다”면서 “그 뿌리와 역사를 아름답게 녹여낸 ‘하와이 연가’ 영화를 통해 한인 이민사를 다시금 돌아보고 처한 위기 상황 또한 함께 진단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진영 감독은 느꼈다. 재외동포 780만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은, 그동안 누군가가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았었던 것일 뿐 121년 전에 시작된 ‘그 분들’의 이야기를 잊거나 외면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영화 '하와이 연가'의 여운이자 제작의 기록들인 책 '하와이 연가'

그래서 이 감독이 더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 중 하나가 책이었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사실 60여 분의 화면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도 없었다. 독립영화라는 특성상 두 시간, 세 시간 씩 런닝타임을 줄 수도 없었다. 또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으면서 그 과정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하와이 연가’와 함께 탄생한 것이 스토리북 ‘하와이 연가’(사유와 공감 출판)다.

   
▲ 영화 개봉에 뒤이어 출간된 스토리북 '하와이 연가'는 단순한 스토리북에 머물지 않고,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기록들이 쓰여 있다./사진=사유와 공감


영화 ‘하와이 연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개봉하고, 또 독립영화로는 적지 않은 관객들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 스토리북 ‘하와이 연가’가 출간됐다. 그럼 이 감독은 이 책에 어떤 것을 담고 싶었을까?

이 감독은 글의 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이다. ‘좋은 글’이 있다면 좋은 영화도 만들 수 있고, 역사의 일이 현재의 일로 치환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의 책 ‘하와이 연가’는 바로 그런 힘을 싣고 움직이는 배와 같다.

또 그는 영화에서 담지 못한 것들, 또 영화보다 더 폭넓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이 책으로 접해지길 바랐다.

“우리 재외동포들이 사는 지역 중에서는 영화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도 있잖아요. 그런 곳도 한글학교나 세종학당 같은 곳이 있죠. 그래서 영화를 못 보고 이 책만 봐도 121년 한인 이민사를 알게 하고 싶었어요. 한국어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면 영어를 통해서라도. 그래서 책에는 한글과 영어가 같이 쓰여 있죠. 이건 너무나 아름답고도 소중한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니까.”

너무 힘들게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은 이 책을 하나의 제작 노트로도 만들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처럼 어렵게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들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지난 4일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하와이 연가’의 북 토크가 열렸다. 100여 명이 꽉 채운 실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그들 중에는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도 있었고, 영화는 보지 못 했지만 책만 읽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들은 이진영 감독의 열정에 놀랐고, 하와이 이민 선조들의 사랑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감동했다.

   
▲ 지난 4일 열린 책 '하와이 연가'의 북 토크에서 이진영 감독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진영 감독의 '연가'는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났다고 한다./사진=사유와 공감


영화를 먼저 보고 그 여운을 간직하고자 책까지 읽었다는 한 참석자는 “하와이 이민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전혀 아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고된 노동과 고립, 고향으로 향하는 애절함 등으로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따뜻한 서로의 사랑이 있고, 식민지 조국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도 있고, 또 살아가야만 하는 그 땅에서 소중한 가족과의 삶을 이어가려는 열정을 지녔던 그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정말 많은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진영의 '연가'는 이제 시작된 것

그럼 이진영 감독은 자신이 하고픈 모든 이야기를 이 영화와 책에 다 담아냈을까? 이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와이에만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고, 하와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국의 땅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 이야기들은 지금 자신이 펼쳐낸 것보다 더 많은 사랑과 감동, 치열한 삶으로 존재하고 있다고도 했다.

“앞으로 ‘오사카 연가’, ‘캘리포니아 연가’, 그리고 더 많은 한국 이민자들의 ‘연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세상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죠. 그중 아주 중요한 이야기도 있어요. 한인 이민사의 출발점. 그건 인천이죠. 그 인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고대 시대 인천을 일컫던 지명이 ‘미추홀’이잖아요. 그래서 한인 이민사의 시작을 ‘미추홀 연가’로 생각해봤어요. 그들은 조국인 대한제국이 저물어 갈 무렵 그 엄혹한 시대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인천에서 그 먼 하와이를 향해 떠났잖아요. 그건 정말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죠.”

이진영 감독 또한 영화가 개봉하고, 책이 출간된 후 자신의 가족이 있는 하와이로 돌아갔다. 그는 그동안 영화와 책으로 인해 ‘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에게 간 것이다. 당분간은 남편과 아이들, 그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 감독은 다시 글을 쓰게 될 게다. 그가 이제 시작한,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들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것이다. 아주 긴 시간, 긴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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