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관광산업육성법' 국회 입법 리사이클링 관행 속 '표절' 논란
동료 의원 법안 인용 법적인 문제 없다지만…‘도덕성 결여’ 지적
[미디어펜=최인혁 기자]국회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은 ‘법안 재활용’ 문제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과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이 ‘입법 절도’ 논쟁으로 확산하면서 재주목받고 있다. 동료 의원의 법안을 참고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김 의원의 주장과 명백한 표절이라는 배 의원의 입장이 팽배하게 맞붙은 탓이다.

해당 논쟁은 현재 표절 시비를 넘어 ‘지역차별’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미디어펜은 학계, 법조계, 정계 관계자를 통해 논란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두 의원의 주장의 적절성을 검증했다.

미디어펜의 취재를 종합한 것에 따르면, 두 의원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김 의원이 배 의원이 이미 발의한 내용과 사실상 동일한 법안을 사전 교류없이 재발의한 것은 도덕적으로 부적절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10월 1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허위 자료 제출과 직원 급여 감액에 대하여 질의하고 있다.(자료사진)/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입법 절도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입법 절도 논란은 지난 19일 배현진 의원이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시작됐다. 배 의원은 본인이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한 ‘치유관광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을 김 의원이 베껴서 발의했다며 이를 ‘입법 절도’라고 지적했다.

배 의원이 문제 삼은 법안은 김 의원이 지난 8월 대표 발의한 ‘치유관광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다. 해당 법안이 자신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법안과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비교할 경우 치유관광산업지구 지정을 위한 신청 대상에 ‘특별자치도지사’를 제외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과, 치유관광자원에 ‘맨발걷기’가 추가된 것 외에는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절검사 사이트인 카피킬러에 따르면 두 법안의 유사성은 무려 99.5%에 달한다.

핵심은 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개정안이 아닌 ‘제정법’이라는 것이다. 제정법의 경우 기존에 없던 법안을 만든 것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작물’이라고 평가된다. 따라서 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김 의원이 조사까지 그대로 인용해 발의한 것에 ‘표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법 절도 논란 왜 발생하게 됐나?

입법 절도 논란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배 의원이 최초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서 수정 없이 통과될 경우 ‘특별자치도’가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배 의원이 해당 법안을 최초 발의한 시기는 2023년 3월이다. 당시 특별자치도는 제주도만 존재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관광기금’을 지원받고 있어 특별자치도가 포함될 경우 이중 지원이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따라서 배 의원은 당시 특별자치도를 제외한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 문제는 입법 과정을 거치는 사이 강원도와 전라북도가 새롭게 특별자치도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 의원의 법안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 강원과 전북이 차별받을 수 있는 결함이 발생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6월 배 의원이 22대 국회에서 법안을 재발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결함을 수정하지 않음으로써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게 됐다.

이에 김 의원은 ‘지역 차별’이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결함을 수정·보완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 나흘 전인 8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전북과 강원 특별자치도가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배 의원이 이에 동의하면서 사실상 결함 보완에 대한 절차가 완료됐다.

그러나 김 의원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26일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면서 ‘입법 절도’ 논쟁에 휩쌓이 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의원실은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동일한 법안을 발의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의원실에서 법안을 발의하기 이전까지 전북과 강원특별자치도가 치유관광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법안의 결함을 수정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법적 문제 없는 ‘관행’이지만…도덕적으로 옳지 않아”

미디어펜의 취재에 따르면 이번 ‘입법 절도’ 논란에 대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없을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동료 의원의 법안을 참고해 입법하는 것이 국회의 오랜 관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부적절한 관행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변호사 출신 국회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실제 내용이 중복된 법안이 발의되는 경우는 많이 있다. 따라서 이를 법적으로 입법 절도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를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을 발의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입법 행위의 목적이 ‘공익’이므로 법안 또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개정안이 아닌 제정법의 경우 이를 위해 입법 공청회 등 해당 의원실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상도덕에는 어긋나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법사위원장들 또한 국회 ‘관행’으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이번 사안은 개정안이 아닌 제정법이며, 법안의 유사성이 높은 탓에 김 의원의 입법 활동이 부적절했다는 의견은 동일했다.

법사위원장 출신 A 전 의원은 "취지가 비슷한 법안을 내는 것은 많이 발생하는 일이다. 그런데 법안의 세부내용을 보았을 때 이를 그대로 재발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동료 의원의 법안을 참고하는 것이 관행은 맞지만, 통상적인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사위원장 출신 B 전 의원은 "의원들이 법안 발의 과정에서 동료 의원들의 법안을 참고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법안은 예술이나 공예품이 아니다. 공익을 위해 발의하는 것으로 이를 절도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법안을 발의한 상대의 노력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예민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서 동료 의원에 대한 배려 부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안을 재활용해 발의하는 것은 관행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입법 절도라는 주장과 관행이라는 주장이 모두 성립될 수 있다. 다만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면서 "의원들이 리사이클링 법안을 발의하는 이유는 의원 평가를 법안 발의 건수로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법안 건수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는 비율로 평가해야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스템 개선을 통해 국회의 옳지 못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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