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부동산부 김준희 기자
[미디어펜=김준희 기자]“조합원들의 알 권리를 막으면 안 되잖아요. 비리나 향응을 막겠다고 시행한 제도가 근본적으로 조합원들의 눈·귀를 막아버리는 형상이 되니까…본질이 없어진 거죠.”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원이자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A씨는 이 같이 말했다.

한남4구역은 최근 정비사업 시장에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1·2위 건설사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지난 18일 한남4구역에 입찰보증금 500억 원 납부와 함께 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업계 1·2위 건설사 간 맞대결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정비사업 수주전을 펼치는 건 지난 2007년 서울 동작구 일대 정금마을 재건축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진검승부 성사에도 현장에서 만난 한남4구역 조합원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양사가 제시한 평당 공사비와 단지명, 조감도 정도 외에는 구체적인 사업조건에 대해 확인된 내용이 없어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대출이나 이주 지원이 어떻게 되는지, 이자 등 금융 조건이 어떤지 등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각 건설사별 사업조건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자 시공사를 고르는 데 있어 핵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이 건설사별로 어떤 것이 있는지 현재로써는 아무 것도 공개된 것이 없다.

이는 서울시가 지난해 말 ‘서울특별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기준’ 개정을 통해 건설사 개별 홍보 관련 규정을 강화한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면서 비롯됐다.

해당 법안 제10조 3항에 따르면 ‘입찰참여자가 조합원 등을 상대로 개별적인 홍보, 사은품 제공 등을 한 행위가 1회 이상 적발된 경우에는 해당 입찰참여자의 입찰 참가는 무효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규정 위반 적발 횟수가 기존 3회에서 1회로 대폭 감소했다.

공정한 정비사업 수주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지침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합원들은 속이 탄다. 내년 1월 시공사 선정까지 약 두 달여만이 남은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개별 홍보가 허용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사업조건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다.

   
▲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 사업지 내 골목./사진=미디어펜 김준희 기자


A씨는 “물론 조합에서 양사 사업조건을 요약한 비교표를 만들겠지만 일반 조합원들은 제안서 내용 속에 들어있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 수가 없다”며 “서로 장단점이 어떤 것이 있는지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조합원들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그런 근본적인 부분이 막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정비사업 지침에 따르면 입찰참여자는 조합의 대의원회 의결을 거친 후 합동홍보설명회를 가질 수 있다. 이후 공식적으로 홍보관을 개설하고 해당 공간 안에서 개별 조합원에게 홍보가 가능하다.

조합은 현재 양사 사업조건을 확정·공표하는 대의원회 일정을 12월 중순께인 15일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시공사 선정 총회 일정이 내년 1월 18일임을 감안하면 공식적으로 홍보가 허용되는 기간은 한 달여에 불과하다.

A씨는 “외부에 거주하는 조합원들은 홍보관에 직접 찾아가기도 어렵고, 찾아가지도 않는다”며 “조합원들의 알 권리를 막으면 안되는데 비리나 향응을 막겠다고 시행한 제도가 근본적으로 조합원들의 눈·귀를 막아버리는 형상이 되니까 조합원 입장에서는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한남4구역 조합원이자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B씨 또한 “조합원 입장에서는 세부적으로 사업조건이 어떤지, 대출이나 이자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그런 건 아직 안 나오지 않았냐”며 “구체적인 제안서 내용이 나와야 어떤 건설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지 고민을 할 텐데 그런 게 없어 다소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합 또한 조합원들의 이러한 답답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공식적으로 홍보가 허용되는 기점인 대의원회 일정을 가급적 빠르게 당기고자 한다.

민병진 한남4구역 재개발 조합장은 “가급적 대의원회 의결을 빠르게 진행해 건설사별 홍보기간을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며 “다만 양사 사업조건 비교 외에도 위반사항에 대한 법리 검토 등이 필요해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이 주체인 정비사업에서 주인공이 돼야 하는 건 조합원들이다. 수주전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서울시의 방향은 올바르지만, 정작 주인공이 돼야 할 조합원들이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조합원들의 알 권리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을지 서울시를 비롯한 모두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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