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 등 훈풍 타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찬성
약속된 전시물엔 ‘강제’ 빠지고 추도식 명칭엔 ‘피해 노동자’ 빠져
日방문 유족 9명과 한국정부 관계자는 25일 별도 추도식 열기로
‘신사 참배’ 외무성 정무관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생 마감 애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한일 간 합의로 24일 열린 추도식이 결국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당초 우리정부 대표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1명과 함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한 한일 간 협상이 진행됐으나 결렬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추도식 개최에 임박해 22일 추도사를 진행할 중앙정부 인사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을 발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우리정부는 일본정부 대표 교체 및 추모와 반성을 담은 추도사를 요구했으나 일본이 응하지 않았고, 결국 23일 오전 추도식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대신 우리정부는 당초 추도식에 참석하려고 결정한 유가족들과 함께 개별적으로 추도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박철희 주일대사를 비롯해 한국정부 관계자들과 일본에 도착한 유족 9명은 25일 별도의 추도식을 가진다. 또 개별적으로 사도광산 내부와 아이카와박물관 기숙사 터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가 부활되는 등 윤석열정부 들어 한일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일본정부가 추진하던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우리정부도 결국 찬성했다. 대신 정부는 일본정부와 협상을 통해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를 알리는 전시물을 설치하고, 매년 7~8월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 2021년 8월 19일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시에 있는 '사도시마노킨잔'(佐渡島の金山·이하 '사도 광산'으로 표기)의 도유(道遊)갱 내부. 2024.11.24./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약속된 전시물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됐지만 ‘강제’라는 표현이 빠지고, 일부 왜곡된 내용도 게재되면서 반쪽짜리 추도식은 일찌감치 예고된 상황이었다. 이번 추도식의 명칭에도 ‘피해 노동자’가 빠졌고, 오히려 일본측은 ‘감사’를 넣으려고 했던 사실도 알려졌다. 여기에 하나즈미 히데요 니카타현 지사가 지난 20일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까지 키워온 모든 분들의 노력을 표현하고 싶은 자리”라고 말한 사실도 있다.

일본측은 사도광산 관련 행사를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축하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의 자축연에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등 한국측의 추도식 참석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도식에 참석하기로 한 피해자 유족 11명의 항공편과 숙소 등 필요한 경비 일체를 일본측이 아닌 한국 외교부가 부담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일본측이 추도식에 참석하는 유족들과 관련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문제는 단순히 금액을 떠나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측은 첫 추도식을 열면서 피해자 유족을 초청해 위로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드러낸 셈이어서 사실 추도식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일본의 사도광산에 대한 인식은 처음 강제노역 시대를 제외하고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해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최대 금광이었던 역사만 부각하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정부가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해 전체 역사에 대한 설명을 반영하도록 요구하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지난 6월 일본의 사도광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 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2024.11.24./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즉각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던 추도식이 3개월 이상 미뤄졌고, 결국 11월 말에서야 열렸지만 일본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파열음만 만들었다. 매년 개최하기로 한 한일 간 약속도 지켜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면서 자칫 한일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측만 참석해 열린 추도식에서 이쿠이나 정무관은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된 동원’ 문제를 생략한 채 인사말을 이어갔다. 그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 아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광산 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종전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신 분들도 있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추도식은 전날 이미 우리정부가 불참 의사를 통보했는데도 식장 내 절반을 빈의자로 채우고 묵념, 인사말,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앞서 주한 일본대사관은 우리정부의 추도식 불참 통보에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추도식엔 이쿠이나 정무관을 비롯해 하나즈미 니가타현 지사, 와타나베 류고 사도시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