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은 경쟁관계·제로섬게임 아냐
공공분야 소프트웨어사업 대기업 참여제한이 중소·중견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위기의 소프트웨어산업, 돌파구는 무엇인가』 세미나 자리에서였다. 발표자로 나선 이호근 연세대 교수는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사업 참여가 제한된 이후 해당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감소했다”며, “도입취지와 달리 중소 소프트웨어업체를 육성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기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을 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해로 연결되는 제로섬 관계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소프트웨어산업 대기업 참여제한은 시장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김기환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정부정책은 사회문제의 해결 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행위이다. 특히 그 정책이 규제적 성격을 갖는 경우에는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 대안의 분석과정에서 정책이 낳는 효과와 그 정책으로 인해 사회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보호하거나 육성하기 위해 다른 집단의 재량권을 통제하는 경우에는 그 규제로 인해 창출되는 편익이 규제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있는지, 편익이나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이나 집단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꼼꼼한 설계와 진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산업의 대기업 참여제한은 대기업의 시장참여를 규제함으로써 중견 및 중소 IT서비스 업체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이 정책은 수년전부터 대기업 소프트웨어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금액의 하한을 정한 이래 관련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특히 상호출자제한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참여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향후에는 중견기업에 대해서도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자 하는 법안이 마련된 상황이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책의 효과성 등을 사후적으로 진단함으로써 목적달성 정도나 부작용, 그리고 향후 바람직한 추진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담고 있는 대기업 영업제한 내용과 효과를 정책적 시각에서 짚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 대기업과 중견 및 중소기업은 완전한 의미의 경쟁관계가 아니다. 즉, 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해로 연결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그동안 컨소시엄 등의 형태를 통해 어느 정도 상생관계를 유지해왔고, 향후에도 윈윈관계가 가능한 관계이다./사진=미디어펜

정책의 효과성을 측정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은 정책으로 인해 달성하고자 한 목적을 특정 정책으로 인해 얼마나 이루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정책효과성을 평가하는 데에 일반적으로 고려하는 몇몇 방법론상의 이슈를 감안하여, 정책의 시행 후에 제시된 내용들을 정책의 대상집단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정책의 대상집단은 중견 및 중소기업, 대기업, 그리고 외국계 대기업 등이다. 첫째, 참여 중견 및 중소기업은 계약건수 점유율과 전체 매출액 비중은 늘었으나 기업의 수 증가와 그로 인한 과다한 경쟁 등으로 수익률이 악화되어 정책의 목적이었던 중소기업의 육성에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중견기업의 정책혜택은 소수에 국한됨). 둘째, 대기업은 규제로 인한 국내시장에서의 영업적 손실 이외에도 (이는 정책의 역기능은 아님) 국내 공공사업 실적의 미흡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셋째, 대기업 참여제한제도 이후 공공 소프트웨어시장은 대기업들이 배제된 채 외국계 대기업들이 국내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게 됨으로써 규제정책으로 인한 보호효과가 중소기업에 귀속되는 것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위에서 제시했듯이 이 정책은 의도한 정책효과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부분적으로 발생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안책으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적 관계 조성을 제시한다. 대기업과 중견 및 중소기업은 완전한 의미의 경쟁관계가 아니다. 즉, 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해로 연결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그동안 컨소시엄 등의 형태를 통해 어느 정도 상생관계를 유지해왔고, 향후에도 윈윈관계가 가능한 관계이다. 하지만 현 제도는 양자를 경쟁관계로 파악할 뿐 아니라 정책의 결과는 어느 한 쪽도 편익을 부여해주지 못하고 있다 (일부 중견기업 제외).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오히려 상생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가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를 위해서라면, 대기업에 대한 시장참여제한이 아닌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육성이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5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위기의 소프트웨어산업, 돌파구는 무엇인가' 세미나에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한국경제연구원

마지막으로, 정책과정의 측면에서 볼 때, 집행 실패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는 규제로 인한 보호대상집단의 의견이 정책과정에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피규제집단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규제를 통해 보호받는 집단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규제정책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정책의 효과를 담보해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등 주요 대상집단들이 정책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김기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