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봉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2월 7일 밤 국회는 12월3일 밤 비상계엄으로 야기된 대통령탄핵소추안을 부결(투표불성립)시켰다. 법이 마련한 절차에 따랐지만 법은 최악(만인 대 만인의 쟁투)을 피하기 위한 것일뿐임이 또 다시 드러났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법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정치는 모름지기 이러한 한계를 넘어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고 모든 공동체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법규범 뿐만 아니라 종교, 윤리, 역사, 자연 또는 인류보편적 가치로부터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최대공약수를 챶아 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연대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적 연민일 수도, 참을 수 없는 분노일 수도 또 윤리적 의무일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모두가 승선하고 있는 인류호가 어딘가에 있을 이상향으로 끝없이 향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최악은 배가 가라앉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침몰을 막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나사는 제대로 조여져 있는지, 혹시나 암초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난파시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법률가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넘어 최적의 안전한 항로를 찾아내고 마른 땅을 향해 항해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법의 또 다른 소임은 공존의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당직자와 시민들이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을 하려는 계엄군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칸트는 사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규범의 총체가 법이라고 하였다. 이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특히 배고픈 타인에게 법은 곧 밥이 되어야 하고 목마른자에게는 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더불어 부대끼며 살아가기'의 틀을 깨뜨리고 자신의 존재만을 내세우며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또 과장하는 것은 법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법을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는 태도는 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드넓은 우주에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일정한 생존의 궤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위성이 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꽉 붙잡아야 한다. 법이란 것이 부디 이 최소한의 기대에 부응하고 이를 넘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봉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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